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있다. 한낮인데 창밖은 저녁처럼 어둡고, 천둥번개까지 치면서 날씨가 점점 더 사나워지고 있다. 청명한 가을 햇살아래 황금처럼, 산호처럼 빛나던 은행나무 단풍나무들은 비바람에 못이겨 몸부림치고 있다.마음까지 추워지는 이런 날, 추위를 녹여줄 따듯한 이야기 하나를 나는 알고 있다. 첫추위가 오던 날 밤, 원주의 박경리선생님 댁 배추밭을 연세대 국문과 학생들이 가마니로 덮어주고 갔다는 간단한 이야기다. 몇해전부터 연세대 원주분교에 출강하는 그는 어느해 늦가을 이렇게 말했다.
『며칠전 밤중에 몹시 추워지는 것을 잠결에 느끼면서 배추가 얼지 않을까 걱정한 적이 있어요. 그러나 너무 고단해 걱정만 하면서 그냥 잤지요. 다음날 새벽 마당에 나갔더니 배추밭에 가지런히 가마니가 덮여 있었어요. 밤에 학생들이 다녀 갔구나 금방 알았지요. 학생들 마음이 얼마나 귀하고 예뻐요?』
그에게 배추밭 고추밭은 밭 이상의 것이었다. 당시 「토지」를 쓰고 있던 그는 글이 잘 안써질 때마다 밭을 매곤 했다. 밭은 글쓰기로 탈진한 그가 새 힘을 얻는 도장이었다. 농약과 비료를 안쓰고 그가 키운 채소들은 고행의 산물이고, 자연보호운동의 상징이었다. 한밤에 달려가 선생님의 배추를 덮어주고 간 학생들에게도 그런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 짧은 이야기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가끔 주변 사람들에게 들려 주었는데, 몇몇 친구들은 『예뻐라…』라고 감탄하다 눈물까지 흘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해 보았다. 그 단순한 이야기가 왜 그처럼 심금을 울릴까. 우리가 오래 잊고 살았던 따듯한 마음에 대한 갈망이 그만큼 깊기 때문일까.
11월의 찬비속에 다시 그 배추밭을 떠올리면서 나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세상, 사람과 자연사이를 생각해 본다. 그 어디에서도 따듯한 눈, 따듯한 마음, 따듯한 보살핌을 찾기 어렵다. 비수처럼 번득이는 증오, 조건반사적인 날카로운 비판, 바람 한줌 안 통하는 꽉 닫친 마음, 끝없는 탐욕과 착취와 파괴, 우리들 사이에 가득차 있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우리들 사이에는 따듯함이 없고, 사무치게 그리운 따듯함에의 추억이 있을 뿐이다.
첫추위에 선생님댁 배추가 얼까봐 한밤에 일어나 달려 가는 학생들처럼 우리도 따듯한 마음을 회복할 수 있을까. 갑자기 추워진 날, 배추를 덮어줄 가마니 한장을 마음속에 갖는다면 우리들 자신이 먼저 훈훈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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