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결하게 읊은 황혼기 신앙고백/절대자 앞 나약한 존재의 자각 절절/내년엔 산문도 모아 20여권 전집계획「바람은 바람끼리,/갈대는 갈대끼리, 비비대고 꺾이고,/혼자서, 나, 방황하는, 알 수 없는 외로움,/스스로는 알 수 없는/혼자만의 외로움//…낮에도, 밤에도, 하늘에도, 땅에도,/빈 광야 혼잣길의/너무 오랜 무망,/너무 오랜 아픔./…」(「스스로는 알 수 없는」).
팔순을 바라보는 원로시인 박두진(박두진·79)씨가 시집을 냈다. 5년전의 「빙벽을 깬다」이후 신작시집으로는 처음 나온 「폭양에 무릎 꿇고」(두란노간)는 88년 12월부터 올해 5월까지 월간 「목회와 신학」에 연재한 신앙시 60여편을 모은 것이다. 기독교집안에서 태어나 독실한 기독교신자로 정결하면서도 굳센 문학인생을 살아온 그는 『아름답게 치장한 시가 아니어서 시적인 재미는 크게 없을 것이지만 나 자신의 절실한 고백의 글』이라고 말한다.
대체로 절대자 앞에 서 있는 나약한 존재에 대한 자각, 종교적 의미에서 죄에 대한 뉘우침, 절대자를 향한 경배의 목소리가 담긴 이번 시를 쓴 7년 기간이 다른 어떤 시를 쓸 때보다도 어려웠다고 한다. 『기분좋게 쓴 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아프게 되돌아보면서 썼다』고 말하고 있다.
이달 중순에는 또 박두진전집으로 기획된 20여권의 책중 첫 세 권이 신원문화사에서 출간된다. 84년 범조사에서 그때까지 쓴 시들을 묶어 시전집 10권을 낸 적은 있으나, 새로 나올 전집은 시론 에세이등 산문까지 포괄한다. 우선 산문을 모아 7∼8권 분량으로 내고, 정지용의 추천으로 1939년 「문장」지에 선보인 「묘지송」 「향현」에서부터 최근 시까지 망라한 시전집 10여권을 보태 내년중 완간할 계획이다.
어쩐 일인지 젊을 때보다 더 시가 쓰고 싶다고 말하는 그는 요즘도 밀려드는 원고청탁을 그리 마다하지 않고 있다. 81년 연세대를 정년퇴직한 뒤 단국대, 추계예술학교에서 가르쳤고 추계에는 지금도 일주일에 2시간씩 나가 「현대시」강의를 하고 있다. 강의를 하고 요즘 젊은 사람들의 시를 읽으면서 「시대환경 속에서 시가 갖는 문학적 의미를 모르는채 취미삼아 쓰는 경우」를 많이 보고 있다. 『진지함보다는 즐기려는 문학의 자세가 시를 약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조지훈 박목월 이한직 박남수와 잘 교류하며 지냈지. 그 중 지훈 목월과 「순수시를 고집하는 경향도 비슷하고 하니 함께 시집을 내는 게 어떻겠느냐」는 합심이 있었던거야. 자연을 좋아하고 청정한 맛을 시어로 다듬어 낼 줄 아는 목월이 그때 3인시집 이름을 청록으로 하자고 해서 좋다고 지은 이름이 청록집이 됐어. 지금은 나만 남고 모두 가버렸지』―60년 가까이 시업을 일구어가는 시인은 여전히 청청하다.<김범수 기자>김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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