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공 경제계 막후 실력자… 수사향방 관심검찰이 7일 금진호(민자)의원을 소환하기로 한 것은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까」라는 속담을 새삼 확인시켜주고 있다. 그만큼 금의원의 6공비자금 연루가능성은 이미 정치권에서 「확신범」으로 소문이 나있었다.
금의원의 검찰출두는 6공 비자금파문의 향후추이에 적지않은 변화와 강도를 예고하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우선 금의원은 이번 파문과 관련해 검찰에 소환되는 첫번째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배가되고 있다. 이 때문에 금의원소환을 계기로 6공비자금수사가 본격적으로 현역 정치인들에게까지 파급될 지 여부에 정치권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와 함께 금의원은 노태우전대통령의 손아랫동서여서 노씨의 친인척에게로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없지않아 그의 향후 거취와 함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검찰은 일단 금의원이 대우그룹의 노씨 비자금 3백억원 실명전환을 알선해준 혐의를 확인하기 위해 금의원을 소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금의원이 6공내내 로열패밀리의 일원으로 경제계의 최고막후실세였던 점을 감안해 보면 수사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 지 예단하기 어렵다.
금의원은 서울대법대를 나와 행정고시에 합격한뒤 총무처, 상공부등에서 근무했던 전문관료출신이다. 그러나 동서인 노전대통령의 후광으로 신군부실세들과 인연을 맺어 80년 격변기에 국보위 상공분과위원장, 5공때는 상공부장관을 지냈다. 금의원의 전성기는 동서가 대통령으로 있던 6공때였다. 당시 금의원은 무역협회 상임고문으로 있으면서 경제계의 온갖 「민원」을 해결해 주는 실력자였다는게 재계의 일반적인 평가이다. 또 6공시절 금의원이 금융계 및 경제부처 등 인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었다는 소문도 파다했었다.
원래 정치지향적이었으나 노씨의 친인척 정치참여 배제방침에 의해 좌절당했던 금의원은 6공말에 와서야 「해금」, 14대총선에서 민자당공천으로 경북 영주·영풍에 출마해 당선됐다. 금의원의 진가가 다시한번 발휘된 시기는 민자당의 14대 대선후보경선과정과 92년 대선때였다. 금의원은 노씨 친인척 가운데 일찍이 친YS노선을 취했고 노전대통령에게 김영삼 대통령지지를 강력히 권유했었다. 야당에서는 금의원을 대표적인 김대통령의 대선자금조달창구로 지목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정치권에서는 금의원이 사법처리될 가능성을 희박하게 보고있다.<신효섭 기자>신효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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