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동당정부 계속집권 불투명/반평화 극우세력 득세 가능성/협상지속 불구 일정차질 관측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가 피살됨으로써 중동의 「평화만들기」가 중대시련을 맞게 됐다. 이스라엘 국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한 라빈의 강단은 살얼음판을 걷듯이 조심스럽게 진행돼온 중동평화회담을 성사시킨 원동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피살은 중동정세 전반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우선 이스라엘 정계에 미칠 파장이다. 라빈과 시몬 페레스 부총리겸 외무장관의 「쌍두마차」로 평화회담을 이끌어온 노동당 정부가 계속 집권할 것인지가 관심의 초점이다. 일단은 페레스가 총리대행을 맡기로 했지만 현행법상 총리 유고시에는 총선을 치르거나 새정부 구성을 위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구심점인 라빈총리를 잃은 노동당은 강력한 시오니즘을 내세우며 반중동평화회담의 공세를 강화해온 리쿠드당과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할 전망이다.
또 이번 암살을 계기로 평화회담에 반대해온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 극우세력들이 득세, 향후 회담에 차질을 초래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중동평화회담은 지난 9월28일 2단계 팔레스타인 자치협정에 서명한후 내년 5월 마지막 3단계 협상의 시작이라는 목표를 향해 순항중이었다.
그렇지만 라빈의 암살로 전반적인 평화협상 무드가 완전히 깨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페레스 총리대행이 라빈의 유지를 받들어 회담지속 의지를 강력 천명하고 있고 회담 중재자인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을 비롯해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등 아랍관련국들도 회담에 확고한 지지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국내적으로도 이번 비극적 사태가 국민 감정을 자극해 평화회담을 추진해온 현 노동당 정권에 힘을 더 모아주는 계기가 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문제는 중동평화의 피날레격이라 할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관계 개선이 「안보의 화신」으로 신망을 받던 라빈 없이도 성사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따라서 라빈의 죽음이 암살범의 목적대로 중동평화무드를 일시에 반전시키지는 못하더라도 내년을 목표로 했던 평화일정을 안개속에 빠뜨리며 지체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이번 암살은 5,000년간 지속된 중동지역내 대립과 반목의 역사를 청산하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윤석민 기자>윤석민>
◎암살범 아미르의 정체/이 극우조직 「에얄」소속 대학생
암살범 이갈 아미르(27)는 텔아비브소재 종교학교인 바르 일란대 법학과 3학년에 재학중인 학생으로 텔아비브 북쪽 인근의 헤르즐리야시 골라니여단소속 예비역 군인이기도 하다. 그는 과거 라빈총리 암살을 두차례나 시도했던 「종교적 확신범」인 것으로 전해졌다.
아미르는 현장에서 이스라엘경찰에 체포된 직후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신의 계시로 암살했다』면서 단독범인 것처럼 말했다. 그는 또 라빈총리가 숨졌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만족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신들은 아미르가 「대이스라엘 건설」이라는 신념에 사로잡힌 유대교 광신도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경찰은 5일 라빈총리 암살배후가 이스라엘 극우과격조직중 하나인 「에얄」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경찰은 『암살범 이갈 아미르가 에얄을 대변해 범행했다는 사실을 실토했다』고 전했다. 이 조직의 지도자인 아비샤이 라비드는 라디오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아미르와의 연계사실을 부인했으나 『아미르는 멋진 남자』라고 추켜세웠다.
에얄은 「유대투쟁조직(JFO)」의 히브리어 약자인데 무장투쟁으로 이스라엘 서안과 가자지구를 지켜야 한다는 성서적 원리론에 충실한 초과격 조직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에얄은 최근 저질러진 몇몇 암살사건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해 왔으며 두달전 요른단강 서안 헤브론시에서 일어난 아랍인 살해혐의도 받고 있다.
에얄과 같이 주로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의 이스라엘 정착민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극우 과격파들은 최근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자 반대 캠페인을 강화해왔다. 이스라엘 라디오는 제보자의 말을 인용, 『범인 아미르는 과격단체원은 아니었지만 광신적이며 에얄과 연결돼 세뇌교육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경찰조사결과 아미르는 범행에 사용한 총을 2년전 구입했으며 경호원일을 하면서 이 총을 사용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조희제 기자>조희제>
◎중동 지도자들 암살·테러 역사/81년 사다트 피살… 93년 아라파트·올해 무바라크 위기 모면
「사다트에서 라빈까지」증오와 대립만이 지배하는 중동에 평화의 비둘기를 날리려던 사막의 지도자들은 증오에 눈먼 매의 제물이 됐다.
모든 아랍국들이 이스라엘과의 공존을 거부하던 지난 78년 안와르 엘 사다트 이집트대통령은 이스라엘과 캠프데이비드 협정을 전격체결, 중동평화의 물꼬를 텄다. 소중한 평화의 일보를 내딛은 그는 하지만 3년뒤 군사 퍼레이드를 참관하던중 이스라엘에 대한 비타협적 투쟁을 주장하는 회교 극단주의 군인들의 총격을 받고 숨졌다. 70년대말 동서 데탕트와 함께 봄기운이 피어오르던 중동은 그의 죽음과 함께 다시 겨울속으로 빠져들었다. 하지만 20여년뒤 냉전종식으로 달라진 세계조류를 타고 라빈 이스라엘 총리는 93년 불구대천의 원수였던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의장과 평화협정에 서명했다.
평화적 공존이란 큰 목표를 위해 유대인정착촌 철거등 이스라엘의 이익에 반하는 조치도 불사하던 라빈총리는 결국 극우파들의 타도목표가 되어 그들의 흉탄에 쓰러졌다.
중동평화의 또 다른 주역인 아라파트 의장과 평화협상의 막후 중재자인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도 테러의 제물이 될 뻔했다.
지난 6월 에티오피아를 방문한 무바라크 대통령은 승용차를 타고 가던중 회교과격단체로 보이는 무장괴한들로부터 무수한 총격을 받았으나 방탄차로 인해 피해를 보지 않았다.
아라파트 의장은 중동평화 협정이 체결된 93년 이스라엘과의 타협을 거부하는 강경파들에 의해 암살될 위기에 처했었다. 다행히 암살음모가 사전에 적발되기는 했으나 아라파트는 지금도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상에 반대하는 팔레스타인 과격파들의 암살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더 이상 피를 흘리지 말자」며 평화를 호소한 중동의 지도자들이 과격파의 흉탄에 피를 흘리며 순교하는 비극은 언제쯤 막을 내릴 것인가.<윤순환 기자>윤순환>
◇중동분쟁 및 평화일지
47년 11월 : 유엔,팔레스타인과 유대국가 분할결정
48년 5월 : 이스라엘 독립선언
49년 7월 : 1차 중동전, 이,파레스타인인 85만명 축출
56년 10월 : 2차 중동전. 이,시나이반도 장악(57년 철군)
64년 5월 :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출범
67년 6월 : 3차 중동전(6일 전쟁). 이,시나이반도 골란고원 요르단강 서안 가지지구 점령 및 동예루살렘 합병
78년 9월 : 이이집트,캠프데이비드협정 체결. 이,시나이 반환
81년 12월 : 이,골란 합병
82년 6월 : 이,레바논 침공(남부 레바논에 안전지대 설치)
87년 12월 : 팔,인티파다(봉기) 시작
93년 9월 : 이팔,1단계 자치협정
95년 9월 : 이팔,2단계 자치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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