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서도 「정치뒷돈」 고질적 관행/뇌물 스캔들에 비난여론 고조/말로만 헌금중단 「편법」 계속돼93년 9월 2일 히라이와 가이시(평암외사)회장이 이끄는 일 경단련(일본경제단체연합회의 약칭)은 수십년간 계속된 기업의 정치헌금 알선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55년 자민당 탄생 이래 계속된 「55년 체제」의 또 한 축이 깨져 나가는 순간이었다. 당시 7월 총선에서 과반수획득에 실패, 호소카와(세천호희)연립내각에 정권을 내준 자민당으로서는 정치자금의 최대 돈줄이 끊어진 셈이었다.
46년 경제4단체를 통합해 발족한 경단련은 1백25개 단체와 9백73개 법인을 회원으로 두고 있다. 통상정책을 비롯한 정부의 경제정책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일본재계의 총본산이다.
당시까지 경단련의 역할은 각 정당에서 정치자금 지원요청이 오면 업계와 기업에 적절하게 분배해 모아주는 일이었다. 정계는 기업에 개별적인 지원요청을 하지 않아 좋고 기업들은 「떡크기」를 고민하지 않아 편하다는 점에서 이 알선행위는 정재계 모두에 환영을 받았다. 당시까지 매년 1백30억엔 정도가 거둬져 정당에 배분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야당은 40년 가까이 계속된 경단련의 「불공정행위」에 불만을 터뜨려 왔고 국민들의 눈길도 곱지 않았다. 정치자금을 거두는 명목은 「정치발전을 위한 재계의 기여」라고 돼있지만 대부분이 집권 자민당에 배분되는 현실에서는 설득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가없는 기업 정치헌금이란 없다」는 속설이 93년에 잇달아 터진 종합건설회사뇌물사건수사에서 속속 확인되면서 경단련의 정치헌금알선에 대한 비판여론은 한껏 고조됐다.
경단련의 헌금알선 중단선언은 이런 흐름속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렇다고 「소액투자로 거액을 챙기는」 기업생리가 바뀐 것은 아니었다. 야당으로 전락한 자민당에 계속 돈을 댈 필요가 있느냐는 타산이 바닥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경단련의 선언은 당장 이듬해인 94년 자민당 몫의 정치자금을 절반으로 떨어뜨렸지만 기업의 정치헌금 전체가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경단련루트」는 기업의 정치헌금중 일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특정정당 또는 유력정치인에게 은밀히 뒷돈을 대는 개별헌금은 애초부터 경단련의 알선범위에 들어 있지 않았다. 따라서 외형상 기업의 정치헌금이 없어진 것은 지난 1월 정치자금법이 개정되면서부터였다.
물론 전력업계가 자민당의 기관지인 「자유신보」에 광고비 명목으로 3년간 25억엔을 지급하는 등 업계·단체와 개별기업의 다양한 편법헌금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2일 경단련이 자민당의 요청을 받아들여 93년 총선당시의 은행차입금 1백억엔의 상환을 위한「최후 알선」에 나서기로 한것도 정치상황에 따라 재계의 태도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경단련의 결정은 하시모토 류타로(교본룡태랑) 자민당총재와의 회담 직후에 나왔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시모토체제의 출범 이후 자민당이 일본의 보수세력의 구심점으로 새로운 기대를 모으고 있는 상황에서 경단련이 새로운 형태로 정치자금조성기능을 부활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도쿄=황영식 특파원>도쿄=황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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