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당·대선과정 틀어졌던 감정/대선자금문제로 새삼 되살아나김영삼 대통령은 30일과 31일 이틀에 걸쳐 공식석상에서 『노태우전대통령은 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원치않아 탈당까지 했다』는 독한 말을 쏟아냈다. 그는 또 『3당합당후 나를 정치적으로 죽이려는 (노씨측의) 갖가지 음모가 있었지만 좌절하지않고 대통령후보를 쟁취했다』고도 말했다.
이는 『대선기간에 노씨로부터 직접 선거자금을 받은바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기 위해 김대통령이 인용한 대선당시의 정황이다. 반면 이같은 말은 후보를 「쟁취」하는 과정은 물론 대선직전까지도 여권내 사정이 얼마나 복잡했던가를 설명해주고 있으며 김대통령 본인이 아직도 당시의 앙금을 씻어내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92년 5월 김대통령이 후보로 결정된이후 이른바 「노씨권력」과 「김씨권력」이 정면대립한 것은 제2이동통신 사업자선정문제였다. 노씨의 사돈기업인 선경을 지배주주로 내정한 정부방침을 당시 김후보가 『친인척에 대한 특혜의혹을 살수있다』며 앞장서 반대했던 것이다. 이에 노씨는 『적법한 심사를 거친 결정』이라고 밀어 붙였지만 결국 여론을 등에 업은 김후보의 공세에 굴복, 논란 2개월여만인 8월28일 선경내정방침을 백지화했다.
2라운드는 8월31일 발생한 충남 연기군 관권선거파문이었다. 한준수 전군수의 양심선언으로 촉발된 이 사건이 대선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한 김후보는 처음부터 전면 여권개편론을 주장, 노씨진영과 큰 마찰을 빚었다. 특히 김후보는 9월16일 회견에서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개각시기와 개각폭을 직접언급했을 뿐 아니라 남북고위급회담 참석차 평양에 가있던 정원식 총리도 경질될 것임을 시사함으로써 노씨진영과 결정적으로 틀어졌다.
이에 노씨는 측근인 노재봉 전총리등의 강경한 건의를 받아들여 18일 민자당탈당과 선거관리를 위한 중립내각구성을 선언했다. 노씨의 지원을 당선의 필요조건으로 생각하고있던 김후보로서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이다. 이후 김후보진영은 사전에 노씨와 교감이 있었던 것으로 서둘러 포장하며 여권의 동요를 추스리는데 안간힘을 다했다. 하지만 10월들어 박태준 최고위원과 박철언 이자헌 김용환 박구일 의원등 반김세력이 잇달아 탈당해 김후보진영의 대선전략은 큰 차질을 빚었다.
김대통령의 「사나운」표현은 이처럼 「기억하고 싶지않은」 과거가 대선자금문제로 불거진데 따른 반응으로 보인다. 하지만 구여권관계자들은 『노씨가 탈당은 했지만 결국 누구를 밀었겠느냐』며 김대통령이 노씨도움을 완전부인하는 것에 의구심을 표시했다.<이유식 기자>이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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