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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벡주 분리독립 찬·반 2인(뉴스 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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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벡주 분리독립 찬·반 2인(뉴스 메이커)

입력
1995.10.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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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성­부샤르 「블록당」 당수/“영계에 눌려지낼수 없다”/프랑스계 주민 정서자극『내일 퀘벡은 새로 태어날 것이다. 세계의 모든 나라들도 새로운 친구가 생겼음을 알게 될 것이다』 캐나다로부터의 퀘벡 분리독립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루시앵 부샤르 퀘벡블록 당수(56)는 투표를 하루 앞둔 29일 승리를 확신했다.

신비한 분위기에 불을 뿜는 격렬한 연설로 유명한 그는 「찻잔속의 태풍」으로 그치는 듯했던 퀘벡 독립열기를 「정치적 폭풍」으로 뒤바꾸어 놓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유세초반전에 그는 점잖게 시작했다. 경제난은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며 퀘벡은 당장 독립해도 노르웨이 스웨덴을 앞서는 세계 17위의 경제대국이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국토면적은 117만㎢로 서부유럽 전체보다 더 광대하다고 강조했다. 누구의 도움없이도 독립공화국을 세울 역량이 있다고 가는 곳마다 역설했다. 하지만 유권자 500만명의 반응은 냉담했고 그는 급기야 방향을 전환했다.

「이제는 우리의 조국을」― 더 이상 영국계에 눌려 지낼 수없다는 프랑스계 퀘벡주민의 정서를 궤뚫는 이 도발적인 슬로건은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1763년 총칼을 앞세운 영국에 빼앗긴 프랑스 영토 퀘벡을 이제 민주선거로 쟁취하자는 감정적 호소가 주효, 투표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왔다.

퀘벡주 시골 출신의 변호사로 연방주의 정당인 자유당원으로 정계에 입문한후 91년 1월에는 퀘벡블록을 창당, 1년후 전국적인 제1야당으로 부상시켰다. 지난해 살을 파먹는 괴박테리아에 감염된 뒤 다리 절단수술을 받아 죽을 고비를 넘긴 그는 지금 북미대륙에 「제2의 프랑스」를 건국하는 꿈에 부풀어 있다.<이백규 기자>

◎반대­크레티앵 가 총리/퀘벡출신 불구 “이득없다”/국민단결 위기극복 호소

장 크레티앵 캐나다총리(61)는 퀘벡출신이다. 여느 퀘벡인처럼 영어보다 불어를 더 잘 구사한다. 하지만 그는 퀘벡분리독립에 반대, 퀘벡분리주의자들로부터 고향을 배반한 정치가로 낙인찍혀 미움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를 「캐나다 민족주의자」로 즐겨 부르고 비퀘벡 캐나다인들은 「소신」있는 총리라고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는 지난 6일 자신의 고향인 퀘벡주 쇼닌강에 내려가 『캐나다는 지금 분열의 위기에 처해있다』며 2,600만 캐나다인이 단결할 것을 호소했다. 주민투표 하루전인 29일 퀘벡주 헐에서 열린 집회에선 『나의 고향 퀘벡의 주민들은 연방 잔류와 탈퇴, 어느 것이 퀘벡에 도움이 되는지 판단할만한 냉철한 이성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며 『퀘벡 없는 캐나다, 캐나다 없는 퀘벡은 생각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분리 반대 논리는 간단하다. 독립이 캐나다 전체에는 물론 퀘벡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퀘벡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누구보다 퀘벡독립의 허구를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가난한 집안의 19형제중 18번째로 태어난 그는 선천적 장애로 한쪽 귀가 먹고 안면마비로 입이 비뚤어졌다. 4번이나 퇴학당한 「불량학생」이었지만 18세때 현재의 부인 알린을 맞나 새사람이 됐다. 그 뒤 명문 라발대 법대를 졸업, 정계에 진출한 그는 9번이나 장관을 지냈고 93년 마침내 총리가 됐다.

그는 지난 주말 캐나다 사상 최대인 10만명의 인파가 모인 퀘벡주 몬트리올 분리반대집회의 열기가 그대로 표로 연결될 것으로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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