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제공 불가피성 입증자료 총 취합/“본격수사땐 경영 큰 타격” 최소화 기대검찰의 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에 대한 수사가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재계의 움직임도 급박해졌다.
노씨 비자금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기업들은 검찰이 이르면 이번주초부터 10여개 기업 관계자들을 소환조사키로 함에 따라 자금제공의 불가피성을 입증하는 한편 경우에 따라서는 비자금제공이 강압적인 상황에서 이뤄진 것이었다는 점을 밝히기로 하고 관련 자료 취합에 나섰다. 특히 수서사건 율곡사업 원전공사등과 관련된 기업들은 검찰의 1차 조사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 노씨에게 제공한 자금이 반대급부를 위해서가 아니라 「성의」 표시였다는 점을 부각시킨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는 또 그룹총수들이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을 경우 단순한 조사차원을 넘어 의외의 상황으로 비화할 수 있을 것으로 우려, 총수의 소환여부에 초미의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재계는 검찰 조사가 본격화하면 30대 그룹중 조사대상에서 제외될 그룹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일요일인 29일에도 주요 임직원들을 출근시켜 관련대책을 숙의했다. 특히 그룹 총수가 해외출장중인 그룹들은 회장과 핫라인을 열어놓고 수사에 대비했고 또 다른 그룹들은 그룹 고문변호사와 법망을 피해갈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날 하오 그룹 총수가 검찰에 첫 소환될 것이라고 알려진 H그룹은 출근한 임직원들을 총동원, 해명에 나섰다. 검찰측로부터 이 그룹의 총수가 노씨의 비자금을 관리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는 설이 퍼졌기 때문이다.
재계는 이같은 설이 단순히 설만은 아닐 것으로 판단하고 사태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최근 수년사이 신규사업 진출은 물론 기업인수에도 적극적이었던 이 그룹의 그동안 자금동원 능력때문에 금융계와 재계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재계는 검찰이 ▲뚜렷한 혐의를 포착한 기업인을 우선 소환한 뒤 사안에 따라 연달아 소환, 차례로 처벌하는 경우 ▲상당수 기업인들을 조사하되 문제삼지 않는 경우 ▲뇌물수수가 분명한 몇 기업을 본보기로 처벌하는 경우 ▲돈 준 기업인 모두를 처벌하고 해당기업에 대해서는 세무조사등을 실시하는 경우등을 상정하고 각각에 맞춰 시나리오를 준비했다.
재계는 그러나 노씨 비자금파문이 재계로 본격 확산되면 기업 경영에 차질을 초래하는 것은 물론 해외거래선에 대한 신뢰도에 치명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는 점을 들어 조사대상의 최소화를 기대하는 눈치다. 재계는 또 『청와대가 돈 내라는데 안낼 기업이 있겠느냐』며 돈준 기업인들이 조사를 받더라도 기소유예등 관대한 처분이나 공소시효가 지난 정치자금법등을 이용해 「공소권없음」의 처분을 내릴 가능성도 기대했다.
주요 그룹들은 이번 사안에 대해 다소 미묘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현대그룹은 『노씨에게 반대급부를 제공하고 공사를 따낸 적은 없다』며 비교적 담담한 표정이다. 그러나 92년1월 정주영 명예회장이 『명절때 청와대에 20억∼30억원씩 주다가 90년말에는 100억원까지 냈다』고 말한 것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검찰이 당시 청와대에 떡값명목으로 자금을 제공한 기업들의 숫자와 규모를 파악하기 위해 정명예회장을 조사하지 않겠느냐는 우려다. 정명예회장은 이와 관련, 최근 언론에 『대통령이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었던 당시 정치자금을 내라는 압력은 공공연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정명예회장은 또 『기업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면 당연히 해야 하겠지만 이번 파문의 핵심은 노씨지 기업이 돼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율곡사업과 관련해 구설수에 오른 그룹의 관계자들은 『검찰이 소환할 경우 떳떳이 조사에 응해 마치 우리기업이 수백억원의 자금을 제공한 것으로 잘못 알려진 사실을 바로잡겠다』고 밝히고 있다. 대부분의 그룹들은 『기업들이 청와대에 비자금을 제공하는 것은 오랜 관행이었기 때문에 앞으로 검찰수사에서 비자금제공 사실이 밝혀지더라도 가혹한 처벌을 해서는 안되는 것 아니냐』는 입장이다.<박정규 기자>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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