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와 친분 무시한채 차명계좌/관리팀 와해 영구은닉 실패설도『큰손의 솜씨는 아니다』 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 관리실태를 살펴본 일선금융계 관계자들의 일반적인 반응이다.
큰손이라면 자금의 조성보다 관리에 더 공을 들인다. 눈에 띄지 않게 돈을 쪼개고 나누고 합치는 「은폐·엄폐」의 정교한 운용과정이 반복된다. 실명제 감시망도 큰손에겐 속수무책인 것도 그만큼 교묘한 관리기법이 있기때문이다.
그러나 노씨의 비자금관리는 자금규모에 비해 허점이 너무 많다. 신한은행 동아투금 차명계좌개설 당시 노씨측은 금융기관에 자금관리를 부탁, 명의를 알선받았다. 그러나 그 명의인들은 ▲노씨측으로선 일면식도 없는 소기업들이거나(신한은행) ▲노출이 쉬운 해당금융기관 고위임원(동아투금)들이었다. 한 금융계인사는 『차명계좌는 전주와 명의대여인간 신뢰와 친분을 전제한다. 그러나 노씨는 수백억원 차명계좌를 열면서 이 교과서적인 원칙도 망각한 채 「알아서 관리해달라」는 식이었던 것같다』고 말했다.
노씨는 수백억원대 비자금을 양도성예금증서(CD)에 묻어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명제때문에 미처 처분하지 못한 것들일 것이다. 그러나 CD는 유통시장에선 지금도 무기명거래가 가능하고 특히 실명제직후 사채시장에선 큰손들이 보유CD 처분을 위해 20∼30% 할인덤핑판매가 유행하기도 했었다. 노씨가 처분기회를 놓침으로써 비자금 영구은닉의 「기회」도 함께 잃어버린 셈이다. 왜 이렇게 허술했을까. 신한은행 동아투금관계자들은 검찰에서 『실명제실시후 2년여동안 노씨측으로부터 차명처리상담은 물론 전화 한통 없었다』고 진술했다. 퇴임후 사정당국의 감시를 받았고 예기치 못한 실명제가 실시됐다고 하지만 노씨의 비자금관리는 아무래도 무지·무성의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금융계는 이와 관련, 퇴임이 임박하면서 노씨의 비자금관리라인이 급격히 와해됐고 그 배경엔 노씨캠프의 근본적 취약점, 즉 「심복의 충성심결여」탓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또 현정부 들어선 대규모 금융계사정으로 이원조·이용만씨등 보스들과 관련인맥이 철퇴를 맞아 결국 6공 비자금은 액수만 많았지 정교하게 관리해줄 사람이 없어진 것도 사실이다. 노씨는 비자금을 긁어모으는데는 「프로」였지만 뒤처리는 「아마추어」였다.<이성철 기자>이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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