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판단과 정치적 절충 별개”/「6공 단절」 가시화도 원군작용이현우 전청와대경호실장에 대한 조사를 고비로 신한은행 비자금 계좌추적을 이유로 한때 주춤하는 기색을 보였던 검찰의 수사가 25일 전 시중은행과 제2금융권으로까지 확대되는등 급속히 강도를 높이고 있다.
검찰의 이같은 분위기 변화는 현재까지의 수사결과 이미 노태우전대통령의 혐의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남에 따라 더이상 사법처리를 피해갈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특히 정치권에서 노전대통령이 비자금의 전모를 공개하고 낙향하는 방식의 정치적 해법이 활발히 모색되고 있는 것과 관련, 검찰은 이날 『정치적인 해결이 수사의 결론이 될 수 없다』고 밝혀 노전대통령이 대국민사과를 하더라도 검찰의 수사는 계속될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최명선 대검차장검사는 이날 『노태우 전대통령의 경우는 검찰의 수사를 받지 않았던 전두환 전대통령의 경우와는 문제가 다르다』며 『사법처리여부나 수위는 비자금의 전모와 조성경위등을 밝힌 뒤 결정할 문제지만 법을 집행하는 사법기관으로서 검찰이 정치권의 해결책을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다』고 노전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 방침이 굳혀졌음을 시사했다.
이같은 입장은 검찰 내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또다른 검찰고위관계자도 『이번 사건은 검찰이 사활을 걸어야 한다. 건국이래 최대의 사정수사가 정치권의 타협으로 무마된다면 검찰은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된다』고 말했다. 검찰이 이미 손을 댄 이상 「사법처리」를 전제로 총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검찰의 강경분위기는 24일 하오 전격적으로 이전실장을 출국금지시키면서 표면화됐다. 물론 출국금지가 반드시 사법처리와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전실장의 조사 당시만 해도 『아직까지 피의자 신분이 아니며, 출국금지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하던 때와 비교하면 체감 강도부터가 다르다. 지금까지 사태의 파장과 여론의 향배를 주시하던 입장에서 탈피, 본격적으로 노전대통령을 향해 선전포고를 한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검찰은 이미 신한은행의 비자금과 연결된 10여개 시중은행에 대한 본격적인 계좌추적에 들어가 6공비자금의 「비계좌」 색출에 전력하고 있고, 25일 상오 비자금 행방의 열쇠를 쥔 이태진 전청와대 경호실 경리과장의 집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또 이전실장의 재소환도 초읽기에 돌입, 사법처리는 기정사실화 됐다.
물론 검찰의 이같은 강경한 입장이 내부의 독자적인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여권에서의 「6공단절」움직임이 가시화되면서 검찰의 「사법처리」입장이 굳어졌고 수사의 톤도 급격히 높아졌기 때문이다. 때문에 여권과 검찰이 노전대통령의 신병처리문제와 관련해 기소유예나 불구속 기소, 사법처리후 사면등 「각론」에 대한 이견은 있을수 있으나 「사법처리」라는 원칙론에서는 공감이 이루어졌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편 일선 중견검사들 사이에서는 노전대통령에 대한 조사방식에 대해서도 방문·서한조사에 반대하는 분위기가 확산돼 주목을 끌고 있다. 전직 국가원수이긴 하지만 재직중 수뢰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를 소환조사하지 않는 것은 외국에도 전례가 없고, 국민들을 납득시키기 힘들 것이라는 주장이다.<이태희 기자>이태희>
◎비자금파문 군의 반응/“군의 명예 결정적 타격” 분노/하나회의 악습 정치서도 답습
노태우 전대통령 거액비자금조성이 사실로 확인되자 군은 분노에 가까운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노전대통령과 이현우 전경호실장이 모두 군출신이어서 「군인의 행태」가 여론의 집중표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사건을 계기로 박정희·전두환 두전직대통령과 대부분 군출신인 측근들의 비리가 또 다시 도마위에 오르자 많은 현역군인들은「군사정권의 후유증」에 대해 괴로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A대령은 『일부 군선배들의 엄청난 비리 때문에 국민들이 전체 군인을 부패집단으로 볼까봐 가장 두렵다. 무기도입과 관련된 온갖 의혹들이 국민들의 머리를 떠나지 않고 있는 마당에 군출신 대통령이 엄청난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이 밝혀졌으니 군인에 대한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라며 『군의 명예는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다』고 허탈해 했다.
이번 사건은 군내에 「하나회」의 폐해를 새삼 인식시켜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육사11기인 전·노전대통령과 17기인 장세동 전안기부장 이전경호실장등은 모두 박전대통령이 지원한 하나회의 핵심구성원들이다.
B대령은 『하나회가 군내에 퍼뜨린 악습중의 하나는「스폰서문화」였다. 하나회소속 장교들은 정치권이나 재계의 유력인사들이 주는 후원금으로 조직을 이끌고 부하들을 장악했다』면서『도덕적으로 별다른 부담없이 외부의 돈을 끌어쓰는데 익숙했던 그들이 정치를 하면서도 그행태를 답습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C장성은 『하나회는 군에서 부정을 저지르고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정권까지 잡았다. 그리고 그들은 정치마저 비도덕적인 자금으로 주무르며 용납하기 어려운 행동을 했다 』며 『대다수의 군인들은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묵묵히 국가안보에 충실했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고 주장했다.
또 이번 사건은 군내에 「장군의 도」에 대한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D중령은『고위장성 출신인 여러 관련자들이 국민 앞에 모든 것을 솔직히 밝히고 용서를 구하는 태도를 볼 수가 없다』면서『장군은 구차하게 변명을 하거나 진실을 왜곡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 장군은 군인의 명예와 가치를 지키고 실현해야 하는 최고의 계급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손태규 기자>손태규>
◎5공청산당시 검찰역할/정치권력 굴레에 「성역」 인정/핵심 전씨·정치자금 아예 제외
6공초에 전개됐던 검찰의 5공비리 수사가 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사건을 계기로 새삼 세간의 관심사로 등장하고 있다. 두사건 모두 전직 대통령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권력형 비리 사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건이 불거지게 된 과정이나 검찰수사의 방향은 판이하게 달라 흥미롭다.
검찰의 5공비리 수사는 88년 2·12총선 결과 탄생된 여소야대 정국의 합작품이었다. 전전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5공세력의 척결을 요구하는 「힘센 야당」에 밀려 6공은 검찰에게 「성역없는 수사」를 지시했다.
88년 4월 당시 전경환 새마을운동중앙본부 회장이 구속됐다. 5공비리 수사의 신호탄이었다. 이후 근 1년동안 계속된 수사에서 전기환 이창석씨등 전두환 전대통령 친인척과 장세동 전경호실장 이학봉 전민정수석등 5공 핵심인물을 포함, 47명이 구속되고 이원조 전은행감독원장등 29명이 불구속 입건됐다.
당시 검찰은 수사 초반 일해재단비리, 노량진수산시장 인수비리, 새세대 심장재단 비리등 전전대통령 친인척 비리수사에 집중했다. 전전대통령 주변 인사를 중심으로 철저하게「외곽때리기 수사」를 진행시킨 것이다. 결국 전전대통령은 대국민사과와 함께 스스로 백담사행을 택했다. 이는 검찰에 수사를 지시한 6공이 바라던 결과였다.
검찰은 당시 『최선을 다한 수사』라고 자부했다. 하지만 정치권력의 상황논리에 따라 변죽만 울린 수사였다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왜냐하면 사건의 핵심이랄 수 있는 전전대통령과 이순자씨에 대한 부분, 정치자금 부분은 아예 수사대상에서 제외시켜 버렸기 때문이었다.
반면 현재 검찰은 노전대통령을 직접 조사해야 하는 정도에서 비켜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그것도 정치권에 핵폭풍을 몰고올 수 있는 정치비자금 문제를 다루고 있다. 『위법행위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라』는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까지 받았다. 충분한 자료와 정보, 일말의 증거만 있으면 거침없는 수사가 가능한 조건은 모두 갖춘 셈이다. 5공비리 수사가 검찰의 아픈 과거였다면 6공 정치비자금 사건수사는 검찰이 국민적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셈이다.<황상진 기자>황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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