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원수라는 경외스런 자리에 올랐다가 임기만료 또는 다른 어떤 이유로 그 직을 떠나게 될 때 그가 무엇을 남기는가라는 문제는 궁금한 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직은 아무나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높은 자리여서 자연히 재임기간동안에는 많은 일들이 베일에 싸이게 된다. 자리를 일단 떠난 뒤에라야 그가 무엇을 남기고 갔는가를 알 수 있게 된다.조선왕조의 경우는 왕이 살아 있는 동안 춘추관 소속의 사관들이 왕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다니면서 왕의 행보 하나하나와 대화를 세세히 적어 사초를 만들어 두었다가 왕이 죽은 후 이 사초를 기초로 승정원일기, 비변사일기들을 참조해 실록을 만들었다. 왕은 죽으나 그에 관한 기록은 남는 것이다. 고려때 만들어졌던 실록은 보존되지 못했고 조선실록만 존재하고 있는데 그 분량이 번역본으로 따지면 트럭 한대분이나 된다.
미국의 경우는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백악관을 떠나면 문서보관소에서 대통령재임시에 있었던 국내 및 국제관계의 문서들을 모아 「대통령―○○○편」이라는 역사자료집을 엮어내고 일정기간이 지나면 해당대통령 재임시에 발생한 기록들을 모두 모아 고향에 만들어지는 기념도서관에 보내게 된다. 대통령기념 도서관들은 그 주의 명물이 될뿐 아니라 대학의 연구보고가 되고 있다.
한국은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등 7명의 국가원수가 거쳐 갔으나 아직 본인들이 쓴 회고록도 없고 이들의 통치기간중에 있었던 일들을 들춰볼 수 있는 자료관도 세워져 있지 않다. 기록된 자료가 많지 않다. 우리민족을 원래 기록이 약한 민족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조선왕조실록만 해도 그런 장구한 세월에 걸친 세밀한 기록사를 갖고 있는 나라가 전세계를 통해서도 거의 없다. 일제지배의 우울한 시기를 지나는 동안 가늘어져 버린 이 기록문화를 바로 청와대에서부터 명경수처럼 깨끗하게 바로 세워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이 기록되고 그 기록이 언젠가 공개되는 것이 명백하게 된다면 누가 감히 거대한 비자금을 건네 받거나 적당주의로 아침에 다르고 저녁에 다른 입으로 하는 정치를 하려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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