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 차명계좌에 입금된 정체불명의 3백억원이 노태우전대통령이 재임때 조성했던 비자금의 일부였다는 사실은 참으로 충격적이다. 이는 경위야 어떻든 국가경영의 책임을 맡았던 전직 대통령의 도덕성, 윤리성을 먹칠하는 중대한 일로서 예산심의와 15대 총선준비를 앞둔 정국에 큰 불씨가 될게 분명하다.국민들로서는 그동안 안개에 덮여있던 비자금의 일부가 드러난 것은 다행한 일이지만 3백억원이 노전대통령 밑에서 경호실장과 안기부장을 지낸 이현우씨가 통치자금으로 조성·사용해 오다가 남아 자신이 관리해 온 자금이라는 데는 아연해하지 않을 수 없다. 그야말로 분노와 함께 깊은 의혹을 더하게 되는 것이다.
우선 분노케하는 것은 지난 1년동안 여러차례 비자금설이 그토록 진동했음에도 노전대통령측이 부인으로 일관해 왔었다는 사실이다. 이번에 3백억원 비자금이 발설되었을 때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등 법적대응도 불사하겠다는 반응까지 보였다.
다음, 깊은 의구심을 갖게 하는 것은 도대체 재임중 누구 누구로부터 얼마마한 자금을 모았고 그동안 어떤 명목으로 얼마를 사용했으며 과연 쓰고 남은 돈이 이것이 전부인가 아니면 극히 일부인가 하는 점이다. 물론 밝혀진 수백억원을 일반 국민들로부터 거뒀을리 만무하며 재벌들로부터 받았을 경우 자의여부도 궁금하기 짝이 없는 대목이다.
사실 당총재인 대통령이건 말단 당원이건 간에 정치자금법 3조에 명시한 당비, 후원금, 기탁금, 국고보조금을 법규정대로 받는 것 외에는 단 10원의 어떠한 자금취득도 불법으로 처벌을 받게 되어 있다. 비자금이나 통치자금이라는 것은 불법자금이요 검은 돈이다.
하기야 92년 정주영씨가 6공때 청와대에 여러차례에 걸쳐 2백수십억원을 전달했다고 밝히자 청와대는 불우이웃돕기에 썼다고 서둘러 해명했다. 어느 불우시설에 어떻게 썼다는 내역 설명은 일체 없었다.
원래 비자금―통치자금―검은 자금을 조성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지만 돈을 모으려면 재벌의 자발적인 헌납, 정경유착에 의한 특혜의 대가, 강제성 모금등을 상정할 수 있다. 6공의 경우 그토록 엄청난 자금을 조성했으면서도 국세청에, 선관위에 신고했다는 얘기도 또 세금을 냈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없다.
지금 국민들은 분노와 의구심과 함께 깊은 좌절감에 빠져있다. 국가의 최고통치권자인 전직대통령과 측근들이 이래도 되는 것인가. 이제 말썽많은 6공비자금의 단서가 밝혀진만큼 국민의 시선은 정부·검찰에 집중되고 있다. 다시는 대통령들이 본의든 아니든 직권을 이용하여 재임중 돈을 거두는 불법적이고 한심한 일을 재연하지 않도록 3백억원 비자금의 조성경위와 4천억원설의 진상을 뿌리째 파헤쳐 관련자들을 의법 조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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