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억 맡긴 얼굴없는 40대 이전지점장 정말 모를까/실명제 감지 고급정보소유자 추정/금융인 “거액예치 신원 모를리있나”「노태우 전대통령 4천억원 차명예금 보유의혹」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면서 신한은행 서소문지점에 3백억원을 예치한 얼굴없는 「40대남자」의 신원이 관심의 초점으로 떠올랐다.
이 40대 남자와 유일하게 접촉한 것으로 알려진 당시 지점장 이우근(현 신한은행 이사대우)씨는 『92년11월과 93년초 세차례 이 남자의 부탁으로 3백억원을 분산 유치했다』며 『그는 세차례 모두 차 한잔 마실 정도의 짧은 시간만 은행에 머물러 정확한 신원을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금융계는 이전지점장이 밝힌 40대남자의 행적으로 미뤄 일단 금융실명제의 전격실시를 미리 감지하고 있던 고급정보의 소유자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금융실명제 실시 9개월전인 92년11월께는 차명은 물론 가명계좌까지 합법적으로 만들 수 있었던 시기여서 금융실명제에 대비하기 위해 「철저한 보안」을 유지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 3백억원이라는 거액이 정권교체기인 92년말과 93년초 집중적으로 예금됐고, 자금세탁의 기본인 이전분산조차 하지 않은 점등으로 미뤄 금융관행에 어두운 거물정치인의 비자금 관리인이거나 심부름꾼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계는 그러나 40대남자가 3백억원을 예치한 이후 2년여동안 나타나지 않았다는 이전지점장의 주장에는 신빙성을 두지 않고 있다. 1억원만 예금해도 지점장이 특별관리하는 우리 금융현실에서 3백억원이란 거액 예금주를 지점장이 모른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이전지점장이 40대남자의 신원을 알면서도 여러가지 사정으로 숨기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비자금 전주를 밝힐 열쇠는 이전지점장이 쥐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40대남자가 1억∼10억원권 가계수표로 3백억원을 예치했고, 수표번호는 서소문지점에 5년동안 보관토록 돼있기 때문에 수표에 배서가 없어도 번호를 추적하면 발행은행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고재학·유승호 기자>고재학·유승호>
◎이전지점장 등 6명 일제 잠적/은행관계자 2명 차명자 3명 등/「외부의 손길」 가능성등 추측분분
박계동(민주)의원이 주장한 「노태우 전대통령 4천억원 차명예금 보유의혹」과 관련, 사실로 확인된 3백억원 차명계좌의 실체에 열쇠를 쥐고 있는 핵심인물 6명이 19일 하오 일제히 잠적해 의혹을 가중시키고 있다.
잠적한 관련자들은 당시 신한은행 서소문지점장 이우근씨와 차장 이화구씨등 은행관계자 2명과 이름을 빌려준 우일종합물류(주)사장 하종욱(43)씨와 아버지 하범수(68)씨, 한산기업 대표 최광문(63)씨, 서부철강 대표 최광웅씨등 6명이다.
특히 이전지점장은 3백억원의 「검은돈」을 수신했다고 시인한뒤 잠적해 궁금증을 더하고 있다. 이들이 박의원의 폭로직후인 19일 하오부터 일제히 잠적한 이유는 크게 두가지 가능성을 들 수 있다. 우선 이들이 3백억원 차명계좌의 실체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전직 대통령 비자금설의 파문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길 바라는 「외부의 손길」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 손길은 3백억원을 차명으로 예치했다는 익명의 40대남자일 수도 있고 전주 등 그 이상의 입김이 미쳤을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하씨가 19일 하오 한국일보등 언론사에 연락, 『신한은행 서소문지점의 요청으로 부친의 이름을 빌려주었으나 예금주가 누군지는 모른다』며 박의원에게 제보한 당초의 주장을 번복한 것은 이같은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또 다른 가능성은 관련당사자들이 박의원의 폭로로 사안의 폭발적 성격을 뒤늦게 깨닫고 당황한 나머지 잠시 여론의 눈길을 피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관련자들 모두가 그것도 동시에 일제히 시야에서 사라져버린 것은 전자의 가능성이 더욱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남경욱 기자>남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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