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은 풍부한데 부도율 높아금융기관·대기업들 남은 돈 재테크/통화증가율 낮은데 금리하락기업설비투자 둔화 자금수요 줄어/금리 떨어져도 대출금리 높아은행 수신경쟁 부담 대출자에 전가최근 시중 자금시장에 몇가지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시장 실세금리는 떨어지는데 부도율은 여전히 높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고 총통화(M2)증가율은 올들어 최저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또 회사채 유통수익률은 연 12%수준까지 하락했지만 은행의 신탁대출금리는 최고 연16%에 달한다.
금리가 낮아진다는 것은 시중에 돈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당연히 기업의 부도가 줄어들고 통화증가율은 높은 수준이어야 할텐데 그 반대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또 은행은 금리가 하락하는데도 신탁대출금리는 왜 이처럼 높게 받는가.
◆자금은 풍부한데 부도율은 높다
회사채 수익률이 연 12%수준까지 낮아지면서 은행이 대출세일을 한다느니 예금을 안받는다느니 하는 말들까지 나온다. 그러나 시장 실세금리가 이처럼 떨어지는 것은 금융기관과 일부 대기업에 자금이 남아돌기 때문이지, 전반적인 자금사정이 좋아서는 아니라고 금융계관계자들은 말한다.
은행(신탁계정)등 금융기관들은 최근 고수익을 보장하고 유치한 예금(은행의 경우 주로 신탁자금)을 주로 회사채에 투자하고 있다. 사겠다는 사람이 많으면 값은 올라가고 수익률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이처럼 회사채의 수익률이 떨어지고 그나마 물량확보도 어려워지자 은행들은 일시적으로 남는 돈을 투자금융(단자)회사에 초단기자금(콜론)으로 싼값(연 10∼11%)에 빌려준다.
투자금융회사들은 이 돈을 다시 대기업에 빌려주게 되고 대기업들은 이 돈으로 은행의 당좌대출금(연 13%수준)을 갚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대기업들은 이 과정에서 최소한 2%포인트정도의 금리차익을 얻게 된다. 돈이 기업의 실수요에 쓰이는게 아니라 금융기관과 대기업사이에서 재테크수단으로 떠돌고 있는 것이다.
반면 8월중 전국의 어음부도율은 0.22%로 덕산그룹의 부도파문이 있었던 2월과 같은 수준을 나타냈다. 특히 지방기업들의 부도율은 0.79%로 25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결국 건설·도소매등 개별업종의 불황과 맞물려 자금의 양극화현상이 더욱 극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통화증가율은 낮은데 금리는 하락한다
9월중 총통화증가율은 13.9%로 올들어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시중에 돈이 상대적으로 많이 공급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실제로 올해 1∼9월중 총통화공급량은 10조5,4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2조8,000억원에 비해 2조2,600억원(17.7%)이나 줄었다.
그런데도 금리가 떨어지는 이유는 무얼까. 한국은행 박재환 금융시장실장은 『자금수요가 그만큼 줄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의 설비투자 수요가 둔화한데다 대기업은 자체 자금사정이 좋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자금 가수요현상이 하반기들어 눈에 띄게 사라진 것도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박실장은 그러나 『시중 자금사정이 좋지만 물가가 안정돼 있는 한 통화를 환수해야 할 필요성은 없다』며 현재의 자금시장 상황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신탁대출금리는 여전히 높다
은행들은 수신경쟁이 가열되면서 시장 실세금리가 떨어지는데도 예금 및 대출금리를 낮추는데 주저하고 있다. 오히려 회사채 수익률이 떨어져 신탁자산의 수익률을 보장해줄 수 없게 되자 일부 후발은행들은 7월 신탁대출금리를 최고 16%까지 올린채 내릴 생각을 안하고 있다. 고수익 경쟁으로 예금금리를 높여놓고 이 부담을 다른 대출이용자들에게 전가하고 있는 셈이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은행들이 수신경쟁에서 뒤지지 않을까 서로 눈치를 보기 때문에 금리인하가 쉽지 않다. 그러나 앞으로는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수익성이 없는 외형경쟁은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김상철 기자>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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