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합방 원천무효 근거/한국민의 의사 반해 명백한 강압적 체결/고종 위임서명 빠진 을사조약부터 무효한일간 역사인식의 갈등은 한일합방 당시 대한제국이 일본제국에 국권을 빼앗겨가는 과정의 합법성 여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문제는 65년 한일 국교정상화 과정에서도 완전히 정리되지 못한 탓에 지금까지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한일합방조약으로 일단락되는 일련의 국권침탈 과정이 명백히 한국민의 의사에 반해 이루어진 만큼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정부는 한일 기본조약 제2조의 「1910년 8월22일 또는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일본제국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또는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는 대목을 한일합방조약이 원천무효임을 밝힌 것으로 해석한다. 일본측은 한일합방조약은 합법적으로 체결된 것으로 유효하다고 강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1910년 한일합방 조약으로 이어지게 된 1905년 을사보호조약부터가 원천무효라는 입장이다. 당시 대한제국의 박재순 외부대신이 을사보호조약에 서명할 때 일본군대의 무력시위가 있었고, 특히 조약에 서명한 박제순에게 준 고종의 전권위임장에 서명이 빠져있다는 점이 그 구체적인 논거로 제시되고 있다. 서울대 이태진(국사학과)교수는 규장각 도서관에서 고종의 서명·수결과 함께 국새도 찍혀있지 않은 조약원본을 발견, 공개한 바 있다. 또 93년에는 고종 스스로가 을사조약을 인허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이 조약은 강제적으로 체결된 조약임을 뜻하는 「늑약」이라고 표현한 친서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렇듯 을사보호조약으로 시작된 일련의 강압적 과정은 한일합방조약에서도 되풀이됐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설명이다.
정부는 한일합방조약이 체결될 때도 조약에 서명한 이완용 총리대신에게 준 순종의 전권위임장 친필 서명도 위조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고태성 기자>고태성>
◎일 망언록
▲53.10.15 구보다(구보전관일랑)한일회담 일본대표=일본의 36년간 한국통치는 한국인에게 은혜를 베푼 것이다. 일본이 한국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중국이나 소련이 들어갔을 것이다.
▲58.7.28 오노(대야반목)자민당 부총재=일본외교는 궁극적으로 미국과의 긴밀한 협조에 중점을 두어야 하고,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한국과 대만이 긴밀한 관계에 있어야 하며, 가능하다면 한국및 대만과 더불어 일본합중국을 형성한다면 좋겠다.
▲61.7.21 아라키(황목만수부)=일본인은 아프리카 토인이나 조선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다행스럽다는 자부심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
▲62.10.5 이케다(지전용인)총리=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의 예를 따라 일본은 한국에 파고 들어가야 한다.
▲65.1.7 다카스기(고삼보일)한일회담 일본대표=일본은 조선을 지배했으나 조선을 보다 좋게 하려고 한 일이다. 일본의 노력은 전쟁으로 좌절되었으나 20년쯤 더 조선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창씨개명은 조선인을 동화해 일본인과 같이 취급하려고 한 조치로 나쁜 짓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65.2.15 시이나(추명열삼랑)외무장관=대만을 경영하고 조선을 합병하고 만주에서 5족간에 협력과 평화를 꿈꾸었던 것을 일본제국주의라고 한다면 이는 영광스러운 제국주의이다.
▲74.1.24 다나카(전중각영)총리=일본과 조선반도의 합방시대가 끝났지만 그 후 한국인이나 기타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볼 때 합방이 경제적인 것보다는 정신적인 진정한 생활속에 뿌리박을 수 있었다는 점을 간절히 느끼고 있다.
▲82.7.23 마쓰노(송야행태)국토청장관=한국의 역사교과서에도 오류가 있으며 한일합방의 경우 한국에서는 일본이 침략한 것으로 되어 있는 듯하나 한국의 당시 국내정세등도 있어 어느 쪽이 올바른 것인지 알 수 없다. 한국에서는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사나이(안중근 의사)가 영웅화·미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것은 한국의 국내사정이므로 일일이 문제삼을 생각이 없다.
▲84.8.10 다나카(전중륙조)자민당 간사장=솔직히 말해 한국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올림픽을 보아도 한국선수들은 유도에서 함부로 상대의 팔꿈치를 공격하는등 지저분한 일을 했다.
▲86.7.25 후지오(등미정행)문부장관=한일합방은 교섭상대가 조선의 대표자인 고종이므로 한국측에도 책임이 있다. 합방이 없었더라도 청국 러시아 또는 후일의 소련이 한반도에 손을 대지 않았다는 보증이 없으므로 일본의 침략이라고 할 수 없다.
▲94.5.3 나가노(영야무문)법무장관=태평양전쟁을 침략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위안부는 당시의 공창이었으며 그것을 현재의 눈으로 보아 여성멸시라고 한다거나 한국인에 대한 차별이라고 말할 수 없다.
▲95.6.3 와타나베(도변미지웅)외무장관=일본이 한국을 통치한 적은 있으나 식민지 지배라는 단어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등 공식문서에는 어디에도 씌어 있지 않다. 한일합방 조약은 원만히 체결된 것이다.
◎일본의 문제/“불평등했으나 합법”/한국 「재해석」 요구 수용땐 “대외관계 기초부터 붕괴” 논리/언제나 덮어두기에만 급급
지난 5일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총리의 「한일합방조약 유효」 발언이후 그 파문이 증폭되면서 한일양국관계가 악화일로를 걷자 일본정부는 표면상 상황타개를 위해 고심하는 모습을 보이고는 있다.
우선 이번 사태의 불씨를 던진 무라야마총리는 17일 자신의 당초 발언에서 다소 후퇴, 한일합방조약 체결과정에서의 불평등성을 인정했지만 한국정부가 요구하는 조약의 원천적 무효인정은 거부했다. 이런 와중에 오는 22일 뉴욕 유엔총회 참석을 계기로 열릴 예정이던 김영삼대통령과 무라야마총리의 한일 정상회담이 취소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다 고노 요헤이(하야양평)외무장관이 17일 김대통령의 최근 일본비판 발언중 『한반도 분단의 책임은 일본에 있다』고 한 부분을 반박, 불붙은 한국 국민들의 반일감정에 기름을 끼얹기에 이르렀다. 마치 일본측에서 계속 의도된 발언이 나오는듯한 형국이 된 것이다.
일본정부 관리들은 한일합방조약의 원천무효와 한반도 분단의 일본책임론에 대해 총리나 외무장관등 각료들이 개인적으로는 어떤 견해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공식적으로 이를 인정할 수는 없는 입장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오늘의 일본의 대외관계가 기초부터 무너진다는 논리인 듯 하다.
일본정부도 한국 국민들의 격앙된 대일감정을 진정시키고 양국의 우호관계를 회복할 필요성을 느끼고는 있다. 한국정부 고위층에 일본정부의 입장을 설명하고 북일 국교교섭 문제도 협의하기 위해 고노외무장관이 방한할 것이라는 얘기도 그같은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일본측의 이같은 생각이 사태의 근본적 해결보다는 말썽의 소지가 있는 과거사를 적당히 덮어두려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무라야마총리와 노사카 고켄(야판호현)관방장관이 조약 체결과정에서의 불평등한 관계와 강압적인 경위등을 인정한 이상 일본정부가 나서 지난 65년 체결된 한일기본조약 2조(1910년 이전에 양국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과 협정은 무효로 한다)에 대해 역사적 재해석을 내리는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갖는 것도 이때문이다. 아사히(조일)신문도 사설을 통해 한일합방 조약체결의 부당성을 솔직히 인정할 것을 일본정부에 촉구했다.
남북분단책임에 대해서도 무라야마총리는 지난 1월 국회에서 『일본국민으로서 역사적인 책임이 얼마간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가 바로 다음날 『분할책임은 전승국에 있지 일본이 관여한 것은 아니다』고 발뺌했었다. 고노외무장관이 17일 『직접적인 책임이 일본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도 기존의 일본정부 견해를 대변한 것이다. 일본정부가 역사적 사실에 대해 눈을 감은채 그때 그때 미봉책으로만 일관해왔기 때문에 언제고 현해탄에 냉기류가 흐를 소지가 크다는 점을 이번 사태가 역설적으로 입증한다. 또한 일본 정치지도자들의 겸허한 역사인식이 전제되지 않는 한 설령 이번 사태가 앞으로 외양상 해결되는 모습을 보인다 해도 문제를 덮어두는데 불과할 것임이 분명하다.<도쿄=이재무 특파원>도쿄=이재무>
◎한국의 입장/“합방조약 원천무효”/“일 자세 오히려 공세적” 판단/외교적 손실 감수 강경한 요구/무변화땐 관계 근본 재검토
역사인식을 둘러싼 한·일간의 공방이 악화일로를 치달으면서 전면적인 외교전으로 비화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일본은 한일합방조약의 합법성및 한반도 분단에 대한 일본의 책임문제등 과거역사 인식에 있어서 오히려 기존의 입장을 공세적으로 강화시켜 가고 있다는 게 우리정부의 판단이다.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일본총리는 17일 국회답변에서 또다시 한일합방조약의 합법성을 강변했다. 고노 요헤이(하야양평)외무장관도 일본이 한반도 분단에 근본적인 책임이 있다는 김영삼대통령의 발언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이에 앞서 김대통령은 유엔 50주년기념 특별 정상회의 참석기회에 한일간 정상회담을 갖자는 일본측 제의에 대한 거부의사를 일본에 통보, 한일관계가 급랭해 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정부는 고노외무장관의 발언에 대해 이례적으로 강력한 비난성명을 발표하는등 발 빠른 대응을 하고 있으나 이미 꼬여버린 양국관계를 해결하기에는 크게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한일합방조약은 원천적으로 무효이고, 일본이 한반도 분단에 근본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은 정당한 역사인식이므로 한치도 물러설 수 없다는 결연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이 차제에 한일합방조약의 합법성및 한일간 기본조약 제2조의 해석에 대한 입장을 바꿀 때까지 외교적 총력전을 펴 나가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한일간의 갈등이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인식차의 표출로 증폭되고 있지만 무책임하고 성급한 대북 접근등 최근 일본의 대한반도정책에서도 비롯되고 있다는 점을 중시하고 있다.
정부는 다음달 초 고노외무장관의 방한을 계기로 과거사문제를 포함해 한일관계의 전반적 재검토 작업에 착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일본의 과거인식에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변화가 있어야 하고 향후 대북관계에서도 남북관계의 진전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는 명시적 약속이 있어야한다는 점이 벌써부터 강조되고 있다.
특히 정부는 한일 외무장관회담을 실무적으로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본측이 성의 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을 경우 회담이 언제든지 무산될 수 있다는 점을 일본측에 이미 통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부의 이같은 강경한 입장에는 한일간의 관계를 정상화시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외교적 손실을 감수해야한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일본이 망언을 계속하고 우리가 그때그때 항의한 뒤 결국은 흐지부지되고 마는 악순환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불투명한 일본의 태도가 지금까지 유지되어온 양국간의 협력기반을 무너뜨리고 있어 양국관계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필요성이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고태성 기자>고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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