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흑인남성 3명중 1명 범법… 비율도 해마다 늘어/원인싸고 흑인 “법체계 잘못” 백인 “범죄인 많아” 대립OJ 심슨에 대한 배심원단의 무죄평결은 심슨 개인의 유·무죄 여부를 떠나 미국사회의 뿌리깊은 인종갈등을 적나라하게 까발렸다는 점에서 그 후유증이 만만찮으리란 전망이다. 심슨의 유명세와 돈의 위력이 무죄평결에 큰 몫을 차지한 건 사실이겠지만 근본적으로 이번 사건의 핵은 인종문제였다.
흑인사회가 심슨의 무죄평결을 뛸듯이 기뻐하는 것은 그가 단순히 흑인들의 우상이라거나 「성공한 동족」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이면에는 미국 법체계에 대한 흑인사회의 오랜 피해의식과 그것에서 비롯되는 일종의 복수심이 깔려 있다. 흑인들이 심슨을 통해 보고 싶어한 것은 백인중심의 왜곡된 법체계를 무너뜨리는 흑인투사의 모습이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사회의 사법 정의는 백인에게만 유효하다」는 흑인들의 기저의식은 최근 발표된 한 보고서에 의해 근거없는 피해의식에 그치는 것이 아님이 입증됐다. 워싱턴에 본부를 둔 범법자 재활·인성교육 옹호단체인 센텐싱 프로젝트(Sentencing Project) 발표에 의하면 미국의 20대 흑인남성 3명중 1명은 각종 범죄행위로 법적 제재를 받고있음이 밝혀졌다. 보고서는 20대 흑인 남성 범법자 수와 그 비율이 해마다 늘어났음을 보여준다. 89년 60만9천6백90명(전체 20대 흑인남성인구 대비 23.0%)이었던 흑인남성 범법자수는 지난해엔 78만7천9백62명(30.2%)으로, 올해엔 82만7천4백40명(32.2%)으로 증가했다.
실제상황은 보고서에 나타난 수치보다 더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이 보고서는 어떤 형태든 법정에 까지 온 흑인 범법자들의 수만 다루고 있으므로 그 이전단계에서 처리된 범법자까지 합치면 전체 범법자수는 이보다 늘어날 수 밖에 없다. 흑인여성의 경우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다. 범법자수로 따지면 흑인남성의 6분의 1에 그치지만 그 증가비율은 지난 5년간 거의 2배에 달한다.
물론 이 보고서에 대한 해석도 심슨 평결에 대한 반응만큼이나 피부색에 따라 달라진다. 대부분의 백인들은 흑인 범죄자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비율이 높을 뿐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러나 흑인들의 입장은 다르다. 흑인 범법자수가 많은 것은 잘못된 사법체계의 피할 수 없는 산물이라는 것이다. 고의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인종편견을 지닌 경찰·검찰·판사들이 백인에 비해 일방적으로 불리한 법적 잣대를 흑인들에게 들이댄다는 주장이다.
양측의 주장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인구비중으로 볼 때 전체의 12%에 불과한 흑인이 강도행위로 체포된 범죄자의 60%이상을 차지한다. 이것을 단순히 인종차별주의자들의 편견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말하는 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러나 인적 요인을 따지지 않더라도 법 자체가 객관적 취약성을 지니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대표적인 예가 마약소지에 대한 연방법이다. 덩어리로 된 크랙 코카인을 소지했을 경우 부과되는 형량은 가루로 된 파우더 코카인을 소지했을 때보다 1백배 무겁다. 5의 크랙을 소지했을 경우 부과되는 형량(5년)은 5백의 파우더를 소지했을 경우 부과되는 형량과 같다. 문제는 크랙 거래로 구속되는 범죄자의 88%가 흑인이고, 그중 3분의 2이상이 다른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 부업으로 돈벌이에 나선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흑인들의 크랙거래가 많은 것은 파우더에 비해 값이 훨씬 저렴해 별 자본없이 손쉽게 취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종에 관련돼 형평성의 문제가 제기되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더욱이 행정부와 입법부 모두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는 도시 흑인 빈민층에 관한 대책마련에는 약속이나 한듯 등을 돌린 상태여서 흑인범죄의 악순환은 일정한 인종적 요인에 의한 것임을 부인할 수 없는 형편이다.<뉴욕=홍희곤 특파원>뉴욕=홍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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