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희생하며 돈버는 것은 행복 아니다”/과소비 폐해 인식… 시민운동으로 확산미국 뉴저지주 메이플우드에서 독신으로 살며 조그마한 가축사료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존 카프리(54)씨는 연간 8만5천달러정도의 수입을 올리지만 쓰는 돈은 월1천2백달러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노후를 위해 저축한다. 3년전 1만8천달러가 넘던 신용카드빚을 10여개월에 걸쳐 청산한뒤 아예 모든 카드를 없애버렸다. 이전까지만 해도 밤늦은 시각이나 주말에도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정확히 하루 8시간만 일하고 주말이면 근처 산을 찾아 하이킹을 즐긴다.
청바지는 닳을때까지 입고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쇼핑이나 외식을 하지 않는다. 이미 7년이 넘은 자동차도 바꿀 계획이 없다. 『필요이상의 물건을 사기 위해 삶을 희생해가며 돈을 버는 것은 결코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것이 몇년전부터 갖게된 카프리씨의 지론이다.
4%대의 낮은 저축률에서 알 수 있듯 열심히 일해 많이 벌고, 버는 만큼 최대한 소비문화를 누리는 것이 일반화한 미국인들의 생활방식이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과도한 소비지상주의가 초래한 삶의 황폐화와 환경파괴에 염증을 느껴 자발적으로 수입과 지출을 줄이고 생활을 간소화하는 추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전통적인 검약주의 전통을 승계하면서도 철학적 탐구보다는 간단한 생활지침에 바탕을 둔 시민운동형태로 전개되고 있는 「신검약주의」를 실천하는 미국인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한단계 낮추기(Downshifting)」 또는 「자발적 간소화(Voluntary Simplicity)」로도 불리는 90년대의 신검약주의는 정형화한 실천지침을 강요하지 않는다.
아예 직장을 그만두고 스키강사나 과수원경영같은 일을 하며 그동안 벌어놓은 돈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커다란 생활의 변화없이 소비수준만을 낮추는 사람들도 있다. 지난2월부터 캘리포니아주에서 「검소한 삶」이라는 소식지를 발간하고 있는 래리 로스씨는 『중요한 것은 삶의 질을 높인다는 소비의 본래개념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덜 일하고, 덜 벌고, 덜쓰며 최대한 간소하게 삶으로써 과다한 소비와 이를 지탱하기 위한 노동이 유발하는 스트레스와 환경파괴를 배격하자는 것이 신검약주의가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메릴랜드주에 있는 여론조사기관 「머크 패밀리 펀드」가 올여름 8백명의 모델그룹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8%의 미국인들이 자발적으로 최근 5년동안 그들의 수입을 줄여온 것으로 분석됐다. 뉴욕주 라인벡에 있는 트렌드 리서치 인스티튜트(TRI)는 지난해 겨울 발간한 연구논문집을 통해 90년대를 주도하고 있는 10대 신조류 가운데 하나로 「신검약주의」를 선정했다.
이미 워싱턴주 시애틀의 「새로운 지도」 포틀랜드의 「지구를 위한 모임」등 신검약주의를 실천하고 권장하는 단체들이 속속들이 생겨나고 있다. 메인주에서 발간되는 「더 타이트 워드」나 시애틀에서 발간되는 소책자 「간소한 삶」등 삶을 간소화하는데 필요한 생활수칙을 다루는 잡지들 역시 큰 호응을 받고 있다. 존 도밍구에스와 비키 로빈이 공동 저술한 「돈이냐 삶이냐(Your Money or Your Life)」같은 책은 92년 발간된 이래 무려 35만부가 팔려 나갔으며 윌리엄 모로의 「자발적 간소화」, 세인트 제임스의 「당신의 삶을 간소화하라」같은 책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이처럼 신검약주의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과도한 소비가 초래한 부작용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성인 1인당 평균 쇼핑시간은 주당 6시간인 반면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은 40분밖에 되지 않는다. 미국인의 1인당소비는 지난20년간 45%가 증가했으나 사회건강지수(Index of Social Health)는 오히려 51%가 하락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과소비로 인한 자원고갈도 심각하다. 「돈이냐 삶이냐」의 저자 비키 로빈씨는 『미국인 1명이 소비하는 에너지의 양은 멕시코인 6명, 에티오피아인 5백31명이 소비하는 에너지양과 같다. 또한 1940년이래 미국인이 사용한 광물자원은 그 이전까지 지구상의 모든 인간들이 사용했던 광물자원보다도 많다』며 미국의 심각한 과소비상태를 지적했다.
신검약주의는 개인의 소비생활뿐 아니라 사회각부문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메릴랜드주의 건축가 트라비스 프라이스씨는 『막대한 관리비용과 인력이 필요한 대규모 잔디정원보다는 유지비가 많이 들지 않는 자연식물등을 이용한 조경이 활기를 띠고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건물을 짓기보다는 기존건물을 보수하는 경향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레저에 있어 조깅 하이킹등 신발 한켤레만 있으면 가능한 간단한 운동이 유행하고 있는 것도 검약주의적 생활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TRI 연구위원 제랄드 셀렌트씨는 『2000년에 이르면 미국의 베이비부머 7천7백만명 가운데 어떤 형태로든 검약주의적인 생활방식을 택하는 사람들의 수가 15%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며 『이에 따라 산업전반에 걸쳐 내구성이 강하고 모양보다는 기능에 초점을 맞춘 제품들이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뉴욕=김준형 특파원>뉴욕=김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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