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심 “협박” 대법선 “훈계” 판결「훈계」는 우리 사회에서 어디까지 용납될 수 있는가. 아이를 훈계하는 어른들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다소 지나친 꾸짖음이 심약한 아이에 대한 「위해」나 「협박」으로까지 받아들여지는 세태에 대법원이 어른의 「훈계범위」를 폭넓게 인정한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형사3부(주심 지창권 대법관)는 16일 동네 여자아이를 수박도둑으로 믿고 수박을 훔친 사실을 추궁하며 협박해 자살하게 했다는 혐의(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로 2심에서 벌금 30만원을 선고받고 상고한 이모(56·여)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전남에서 농사를 짓는 이씨는 지난 92년 7월초 자신의 수박밭을 지키고 있다 부근을 서성이던 김모(당시 13세·중1)양에게 「수박도둑」임을 추궁하고 『학교에 전화를 하겠다』며 윽박질렀다. 이씨는 김양이 부인하자 이웃집으로까지 데리고 가 『앞으로 수박이 없어지면 네 책임』이라는 등의 말을 하며 꾸짖었다.
김양은 1시간여 뒤 제초제를 마시고 자살했다. 이씨는 김양을 협박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협박죄에 해당하는 「협박」은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의 해악을 고지하는 것으로 구체적이어야 한다』며 『이씨가 한 말 정도로 김양이 공포심까지 느꼈다고는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계속되는 수박도둑을 잡기 위해 지키고 있던 이씨가 한 마을에 사는 먼 친척인 김양이 두리번거리는 것을 발견, 김양을 범인으로 믿고 신체적 폭행등은 하지 않은채 훈계하기 위해 말한 것일 뿐』이라며 『김양이 공포심을 느꼈다고 해도 말하게된 경위, 이씨와 김양의 관계·나이등으로 볼때 이씨의 말은 사회상규상 정당한 훈계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김양의 음독자살은 자신의 결백을 밝히려고 한 것으로 보이며 이씨의 협박에 의한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법원의 이날 판결은 이씨의 꾸짖음과 김양의 자살이라는 인과관계 여부에 대한 논란을 떠나서라도 아이에 대한 어른들의 「훈계권」을 인정한 보수적 메시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현상엽 기자>현상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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