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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사랑과 꽃씨/새정치 국민회의 총재 김대중(이주일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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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사랑과 꽃씨/새정치 국민회의 총재 김대중(이주일의 시)

입력
1995.10.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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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의 마음으로 꽃밭가꾸면 시련도 소중함으로 10여년 전 어느 날 도종환시인의 「접시꽃 당신」이라는 시집을 읽었습니다. 나는 시를 읽어나가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도종환시인의 슬픔 속으로 나 자신도 깊숙이 빠져드는 것을 느꼈습니다.

 「접시꽃 꽃씨를 묻으며」라는 시였습니다. 「모든 것이 떠나고 돌아오지 않는 들판에/사랑하는 사람이여, 나는 이 꽃씨를 묻습니다」로 시작되는 이 시를 통해 도종환시인의 아내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내 가슴 속에도 전이되어 왔습니다.

 59년에 사별한 아내생각에 한동안 숨이 멈춰지는 듯 했습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잇따른 낙선, 기울어진 가산, 신고의 생활에도 불구하고 남편 뒷바라지에 힘든 기색조차 없었던 곱고 어여쁜 아내의 모습이 눈에 선했던 것이지요.

 그때 생각했습니다. 과연 인간의 죽음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이를 갈라서게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나 자신에게 답해 주었습니다. 부부의 사랑은 어느 한 쪽의 영혼과 육체가 분리된다 해도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라고.

 꽃씨를 묻습니다

 꽃씨는 꽃을 피우게 하고 꽃은 씨를 남기고 또 꽃은 피고…. 사랑은 영원이지요. 36년이 지난 이 시간에도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늘 새롭게 솟구치는 것을 느끼면서, 나의 마음을 꽃씨가 뿌려지고 꽃이 피워지는 사랑의 화단으로 스스로 가꾸고 있습니다.

그 속에 꽃씨 하나를 묻는 일이/허공에 구름을 심는 일처럼 덧없을지라도/그것은 하나의 약속입니다

 사랑함으로써 견뎌야 할 고통, 그것을 감내하는 마음가짐, 고통을 이겨낸 환희, 이런 과정들이 결국 사랑을 이루게 되는 것이지요. 어떤 대상에 대한 경건한 마음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사랑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식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사랑은 그냥 얻어지는 쾌락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어두운 시절부터 나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꽃을 가꾸기 시작했고 그것은 지금도 나의 가장 큰 취미입니다. 꽃을 가꾸다 보면 온갖 시름이 다 가시고 어느새 즐거움으로 가득찹니다. 고난의 세월조차 소중함으로 느껴집니다.

 꽃밭에서 꽃을 가꾸며 나는 속으로 되뇌입니다. 「참으로 기복 많은 삶을 용케도 견디어 왔구나」 아마 내 나라와 국민에 대한 사랑으로 살아남아 온 것일 것입니다. 국민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면 80년 차디찬 감옥 속에서 『대통령만 포기하면 무엇이든 시켜주겠다』고 회유하던 유혹의 손길에, 『합당하면 대권도 보장하겠다』던 6공의 꼬임에 무너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개인으로서의 삶이든, 공인으로서의 삶이든 사랑이 없으면 난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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