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청거리는 세여자로 본 결혼의 갈등/서로 다른 위기대처방식 진솔하게 그려/원작소설의 「꿋꿋한 여성」 모습은 퇴색세명의 여자와 세명의 남자.「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감독 오병철)는 이들이 삶을 꾸려가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여자와 남자가 만들어 내는 풍경 특히 결혼생활은 그리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작가 혜완(강수연 분)과 주부 영선(이미연 분), 아나운서 경혜(심혜진 분)도 물론 그쯤이야 알고 있었다. 나름대로 대책도 있었다.
말하자면 경혜는 의사인 남편의 외도를 묵인하는 대가로 여유있는 삶과 전문직 여성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받았다. 영선은 자신의 희생을 바탕으로 남편이 성공한다면 그들의 삶이 행복하리라 생각했다. 아마도 가장 요령없는 사람이 혜완일텐데, 학생 남편에 아이까지 있다. 거기다 불운이 겹쳐 아이를 교통사고로 잃은 후 이혼한다.
영선과 경혜 역시 휘청거리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영선은 성공한 남편의 바람기에다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렸다는 자괴감 때문에 알코올 중독에다 자살까지 시도한다. 그렇다면 정말 이혼해야 할 사람은 영선일텐데 그는 왜 떠나지 못하는 걸까.
휘청거리는 세명의 30대 여자들은 서로에 대한 우정과 충고로 위기를 극복하려 한다. 영화는 짜임새 있는 플롯과 정갈한 화면으로 이들의 위기와 추락을 관객에게 평범하게 전달해 준다. 소설과 달리 영화의 전반적 분위기와 종결부의 톤은 따뜻하고 대사들은 재치와 희극성까지 띠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멜로드라마적 타협이라고 질타하는 것이 반드시 옳은 일 같지는 않다. 오히려 95년의 여성들에게 어울리는 전환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듯 하다. 물론 여기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예컨대 동명의 소설이 여성독자들에게 다가갔던 부분은 여성 스스로가 자신을 소중히 여기면서 「바람처럼, 사자처럼 그리고 무소처럼」가라는 자기애로 충만하고 비장한 의연함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영화는 이 점을 상당부분 탈락시키고 있다. 「무소의 뿔을 뽑아버렸다」고 하면 지나친 비유가 될 것이다. 이 영화가 무소로 살아 있는지, 아니면 그냥 양순한 소가 돼버린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남녀간에 서로의 관계와 삶에 대해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면 한번 봐야 할 영화이다.<김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교수>김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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