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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씨의 사과(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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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씨의 사과(사설)

입력
1995.10.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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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문화혁명에 비하면 광주사태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망언을 했던 노태우 전대통령이 뒤늦게나마 희생자가족들과 국민에게 사과한 것은 당연하다. 처음 망언이 문제가 되자 「이야기가 본의 아니게 전달되어 유감」 운운했다가 국민의 반발만 가중시키고 여당까지 분명한 해명과 사과를 요구하고 나서자 그때에야 심각성을 깨닫고 사과한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전직대통령이 너무나도 엄청난 역사적 사태에 대해 한심할 정도의 역사인식을 지녔음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그렇지 않아도 상당수 국민이 5·18사태에 대해 공소권 없음이란 검찰의 결정에 의아해 하고 야당과 교수·학생등이 특별법제정을 요구하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노전대통령의 광주사태발언은 명백한 실언인 것이다.

노전대통령이 광주사태를 문화대혁명과 비유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문혁(문화대혁명의 약칭)이 어떤 사건인가. 한마디로 실정을 거듭하여 경제난과 체제불안에 직면한 마오쩌둥(모택동)이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수정주의자들의 숙청을 선동함으로써 1965년말부터 10년간 중국대륙을 혼돈으로 몰아넣어 수백만명이 자살, 타살, 수감, 숙청된 것을 비롯하여 수천만명을 희생시킨 대광란극이었다.

이로 인해 중국은 20∼30년간 국가발전이 정체내지 후퇴했음은 잘 알려진 대로다. 마오쩌둥 사망후 중국은 문혁을 주도했던 4인방등 핵심인사들을 재판에 회부, 처벌함으로써 광란극을 청산하고 등소평에 의해 개혁개방을 단행했던 것이다. 분명한 것은 문혁의 진상을 규명하고 극소수의 핵심관련자들을 재판한후 사면했던 사실이다.

80년 신군부가 저지른 광주사태는 어떠한가. 노전대통령의 말대로 「반란」이 「민주화운동」으로 규정되고 보상노력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많은 무고한 양민이 희생된 사건임에도 진상과 함께 주동자와 관련자도 밝혀지지 않은채 검찰에 의해 「공소권 없음」으로 낙착됐다. 문혁과는 처리방식이 전혀 다른 것이다.

또한 과거의 업적과 영광을 먹구름에 가려 버리는 우리 정치문화의 고약함에 대해 노전대통령이 불평한 것은 일응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역대 집권자들 스스로의 잘못 때문이다. 우선 이승만 정부가 정부수립후 친일파를 단죄하라는 국민요구를 묵살, 이들을 등용하여 민족정기를 뿌리째 훼손하고 흔든 것을 비롯, 12·12, 5·18같은 역사적 죄과에 대해 진상규명을 않음으로써 아무도 책임지지 않게 했던 만큼 국민에게만 지난 업적과 영광을 바르게 평가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이다.

아무튼 이번 노전대통령의 실언―사과는 국가적 지도자의 말이 얼마나 큰 상처와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증명했다는 점에서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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