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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삐삐(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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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삐삐(메아리)

입력
1995.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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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노라면 개인적으로 예기치 못한 상황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다.나에게는 2년전 5월 입원해 있던 병원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군번줄에도 O형으로 찍혀 있던 혈액형이 수술을 앞둔 검사에서 B형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바뀌었다기 보다 혈액형이 그제서야 바로잡혀졌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다. 집단검사의 오류에서 비롯된 일이지만 충격이었다.

그러나 고교생인 장남에게 아버지의 혈액형 돌변은 그야말로 풀리지 않던 미스터리를 한꺼번에 해결해준 「낭보」였다. 녀석의 혈액형이 부(O) 모(A)사이에서 도저히 나올 수 없는 B형이었으니, 사춘기 특유의 감성으로 출생의 비밀이라도 있는 것처럼 고민깨나 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교통사고로 밝혀진 자식의 혈액형 때문에 단란했던 가정이 풍비박산나는 드라마같은 현실이 종종 벌어지는 세상이니. 한국일보 자매지인 일간스포츠와 대한적십자사는 지난 3월부터 한국이동통신, LG정보통신의 협찬으로 「생명삐삐」 보급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희귀한 혈액형인 RH(―)형 사람들에게 사랑의 생명줄인 삐삐(무선호출기)를 무상으로 지급, 수혈을 못 받아 죽어가는 어처구니 없는 비극을 줄여보자는 취지이다. 우리나라 국민의 0.3%선인 13만여명이 RH(―)형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은 수술 출산 등 응급상황에 처해도 수혈받기가 힘들어 마음을 놓고 살 수가 없다. 그래서 88년에는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RH헌혈봉사회를 조직, 상부상조하고 있다. 윤재호(41)회장은 『전국 15개 적십자혈액원에 등록된 회원이 3천7백여명에 달하지만 2천명 정도가 생명삐삐로 서로 이어진다면 귀중한 생명을 많이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분 생명삐삐는 지난 6월2일과 9월30일 두 차례에 걸쳐 8백68명에게 지급됐다. 회원들은 생명삐삐에 「505」 또는 「9191」이란 숫자가 나오면 봉사회로 연락한 뒤 해당 병원으로 달려간다. 505는 SOS와 닮은 꼴로 구명신호를 의미하며, 9191(구하나, 구하나)는 「구하자, 구하자」를 뜻한다. 얼마전 RH(―) AB형인 40대 여자가 사경을 해매던 인천 길병원에는 11명의 「혈맹」이 뛰어가 목숨을 구했다.

혈액형은 이처럼 신이 만든 절묘한 「방정식」이요, 무엇으로도 지우거나 바꿀 수 없는 반석같은 진리 그 자체이다. 희귀 혈액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피가 모자란다. 지난해의 경우 혈액제제용으로 23만8천ℓ(1백10억원상당)를 외국에서 수입했다. 베풀지 못하고 살아온 인생, 이제부터라도 공동체의 장인 「헌혈의 집」을 찾아 나서야겠다.<설희관 여론독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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