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들이 지나치게 「투명성」에 집착하고 있다. 독단적이고 임의적이었던 과거 행정에 호된 비판이 제기된 뒤로, 특히 현정부 출범이후 각종 정책결정과정에서 공무원들은 투명성을 강조하고 최근에는 그 도가 지나쳐 「투명성 콤플렉스」에 빠졌다는 비판까지 나올 정도가 됐다.지난 10일부터 시행된 새 해외투자제도에서 이 콤플렉스는 재차 확인됐다. 해외투자건실화를 위해 기업이 1억달러이상 거액투자시 투자액의 최소 20%를 꼭 자기자금으로 충당하도록 한 이 제도는 이미 지난 92년 투자촉진차원에서 용도폐기됐던 규제다. 재경원은 『재무구조가 나쁜 기업이 은행빚만으로 마구 투자한다면 기업 자신의 부실은 물론 연관산업피해 외채증가등 큰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며 규제부활의 이유를 설명했다.
일리 있는 발상이다. 최근 천문학적 규모의 기업해외투자들을 보면 건설업체들의 무차별적 중동진출로 혼쭐이 났던 80년대중반의 악몽이 연상되기도 한다. 재계는 3년만의 규제신설에 「세계화의 걸림돌」이라며 반발하고 있지만 규제완화가 모든 정책기준의 철폐일 수는 없다.
문제는 규제방식이다. 건실기업엔 굳이 비싼 자기돈을 쓰게 할 이유가 없고 불건전기업이라면 자기자금을 90%이상으로 하도록 명령할 수도 있다. 국민경제의 최종책임자인 정부로선 굳이 20% 수치에 구애됨이 없이, 폐기된 규제를 부활시키지 않고도 기존 제도로 얼마든지 정책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정부는 명문화·수치화한 정책만이 투명성과 신뢰성이 있다고 믿고 있다. 명백한 기준없는, 독단과 임의로 가득찬 권위주의 행정이란 비판을 받기 싫은 이유다. 그러나 정부 스스로 정책의 투명성에 자신있다면 굳이 규제를 수치화·명문화하지 않아도 국민은 투명성에 이의를 제기할 까닭이 없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