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는 왜 높은가? 에베레스트가 단지 히말라야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라는 점이 「정답」으로 주어지고 있다. 단순히 우스갯거리의 우문현답으로 넘겨 버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모든 부문에서의 국제경쟁력 강화 또는 세계일류화를 위한 노력이 유달리 강조되고 있는 최근의 사회분위기를 생각할 때 웃고 지나치기에는 너무나 심각한 교훈을 담고 있다.우리의 일반적 사고습관으로는 세계일류화는 주로 개인적 성취를 바탕으로 측정된다. 특정 학자의 노벨상 수상이나 특정 연주가의 세계무대 진출등이 유달리 강조되는 것이 그 증거다. 어릴 적부터 교육되어 온 「한국인의 우수성」이 국제적으로 증명되어야 한다는 국민적 열망이 일류화열풍의 밑거름이 되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전혀 시비할 이유가 없지만 소위 세계일류화를 위한 효과적 전략을 수립하는데 있어서 이러한 사고가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차분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광복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초청되었던 조국을 빛낸 음악연주가들을 한번 보자. 분명히 자랑스런 한국인임에 분명하지만 그들을 세계일류로 만든 것은 우리의 사회도, 우리의 교육체제도 아니다. 그들은 모두 에베레스트에 오르기 위해 히말라야로 떠났던 사람들인 것이다. 이들은 나름대로 성공하여 에베레스트 그 자체는 아니더라도 그에 버금가는 준봉들을 정복했고 이로써 조국을 빛낸 것이다.
사실 지난 수십년간 「한국인의 우수성」이 유달리 강조되었던 점을 뒤집어 보면 식민통치나 전화 등을 겪으면서 모든 면에서 낙후되어 온 점에 대한 손상된 자존심, 즉 열등감이 상당히 작용해 왔다는 점을 감추기 어렵다. 이러한 수모감을 극복하기 위해 우수한 개인적 자질을 빨리 꽃피워 세계에 알리고자 히말라야든 알프스든 필요하다면 어디든지 내보냈고 그 결실을 이제 보게 된 것이다.
이미 충분하여 더 필요치 않은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 사회 전체의 수준향상을 위해서는 이러한 작업에만 계속 매달릴 수만은 없다. 국제적으로 저명한 몇몇의 연주가나 체육인이 손상된 민족적 자부심을 회복시켜 주었지만 그것이 곧 우리 사회의 전반적 수준을 향상시키는 일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전체로서 에베레스트나 그에 버금가는 수준의 성취를 이루고자 한다면 바로 에베레스트를 쌓으려 할 것이 아니라 우선 히말라야를 조성하는 작업에 더 큰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에베레스트를 지향하면서 하는 히말라야 조성의 작업이란 곧 공공재산인 우수한 인적 자원을 우리 스스로 길러낼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의 기반조성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교육은 남을 떨어뜨리고 내가 입시에 합격하는 일, 말하자면 우물안 개구리들끼리의 다툼이었을 뿐이다. 이러한 교육에 의해 길러진 수학의 천재들도 국제대회에서는 바닥을 헤매고 음악교육비는 음악의 본고장보다도 비싸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일류 연주가가 생산되었다고 하는 얘기는 아직 들은 바 없다.
현재 세계화는 불가피한 현상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해동포주의의 도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국가주권에 의해 보장되던 정치적 보호막이 반칙으로 여겨지는 새로운 경쟁시대의 도래를 의미하는 것이다. 국산품과 수입품의 경쟁은 질과 가격에 의해 이루어져야지 애국심 또는 제도적 차별에 의해 왜곡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에베레스트에의 도전은 이제 단순한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라 사활의 문제가 된 것이다. 따라서 우물속 개구리들 사이의 경쟁에 초점이 맞추어진 교육은 더 이상 방치되어서는 안된다.
에베레스트의 도전을 위한 히말라야의 조성은 한 마디로 지식과 기술 나아가서는 문화전반의 독자적 생산기반의 건설을 말하는 것이다. 축구선수가 되기 위해 선수 개인이 축구장을 마련할 필요가 없듯이 각종 문화적 생산의 기초시설은 사회적 자원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바로 상품화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의 생산보다는 지식과 기술을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초교육에 상당한 투자가 필요하다. 기초가 무시되면 지식과 기술의 종속은 영원히 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18세기 영국인들이 「화란병」이라고 지적한 사태, 즉 개인들은 부자인데 나라는 가난한 현상이 하루바삐 극복되어야 할 것이다. 자기 자식의 과외를 위해서는 얼마를 써도 아깝지 않으면서 공공도서관 건립은 남의 문제로 여기는 사고방식이 하루바삐 극복되지 않으면 지금까지 이룩한 작은 성취도 곧 수포로 돌아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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