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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원의 「난간 위의 고양이」(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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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원의 「난간 위의 고양이」(시평)

입력
1995.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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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응을 거역하는 욕망의 치떨림쿠르베의 그림 「잠」에서 발가벗은채 끌어 안고 잠들어 있는 두 여자를 보면서, 여기에 두 개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남자가 말하자, 그것은 두 개의 더러움이라고 여자가 대꾸했다. 남자가 제 욕망의 대상을 거기서 본 것이라면, 여자는 바로 자신의 욕망을, 그것도 항상 모욕받는 방식으로만 존재할 그 욕망 자체를 본 것일까. 박서원의 시집 「난간 위의 고양이」(세계사간)는 그 욕망의 현실을 가차없이 드러내어 우리를 당황하게 한다.

이 욕망은 어디에 안착할 곳이 없이 크다. 시인은 「희롱하는 술잔과 사랑의 즐거움」으로 드레스가 찢겨나가는 「파티」에서 제 「유년의 공작새가 그 누구의 어깨 위에도 앉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예감」한다. 여자가 어느 자리를 선택해도 그 욕망은 재단되고 모욕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택이 성장을 약속해 주는 것이 아니라면 유년의 화려한 욕망으로 남는 것이 더 낫다. 그러나 시인은 결심하는 것이 아니라 「예감」한다. 그가 선택하더라도 선택은 결국 방황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뜻이겠다. 게다가 이 방황에는 더 이상 유년의 순결함이 없을 것이다. 여자는 제 육체가 당할 모든 모욕에 다시 제 욕망으로 대갚음하며 헤맬 것이다. 헤매는 자리는 잃어버리는 자리가 되며, 방황은 마침내 자폐의 형식을 지닐 것이다.

자폐는 제가 받은 모욕에 항상 보복을 꿈꾸며 동시에 순결을 바라는 이 욕망의 강박관념이다. 시인은 「양수 속에서부터 어른」이며, 말하자면 더 이상 미래가 없이 태어났으며, 「무덤으로부터의 유년」을 안고 사는 것이 그의 삶이다. 「표범처럼 완전한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 여자는 「독방」으로 가야 한다. 풀어 말해서, 날마다 꿈꾸는 간음은 어둡고 외로운 수음으로 끝난다.

자폐는 물론 순응이 아니다. 그것은 꿈이 현실 속으로 쏟아져 나와 광란상태를 이룰 때까지, 저 원한과 욕망을 질량 높게 보존하는 방식이다. 여자는 곱게 화장하지만, 그 한 겹 피부 밑에는 「갸냘픈 조각배」라도 띄울 주름살이 있으며, 그 세포들은 「네 몸을 끝까지 사랑해 주는 피의 애무」를 기다린다. 그래서 「문으로 가는 길」에서처럼, 이 욕망이 정일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순간을 조심해야 한다. 「말갈퀴는 고요히 눈보라치고/마부는 눈이 멀어/마을로 가는 입구는 넓다/이 모두를 잿더미로 끌어 안고//적막,/모든 목소리를 들어야 하리」 이 적막 밑에는 단 한 번의 거친 숨결에도 터질 지뢰밭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 앞에 있는 여자이다.

여성주의는 우리 문단에서 오랫동안 논의의 대상이 되어왔지만, 그 여성주의가 논리를 넘어서서, 차라리 논리를 짓밟고, 이렇게 과감하게 실천된 예는 드물다.<황현산 문학평론가·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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