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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입력
1995.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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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전처 살해혐의로 기소된 흑인 미식축구 스타 O J 심슨의 무죄석방은 「돈과 인종주의에 의한 미국식 판결」이라는 것이 국제사회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독일의 한 TV는 『미국내 흑인들의 승리』라고 단정했다. ◆미국 재판사상 최대의 관심을 모으며 9개월 동안 계속된 이 「세기의 재판」은 미국언론의 선정적 보도 때문에 범죄의 진실을 밝히기보다 「법정 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사실 이 사건은 대중의 흥미를 자극할 만한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었다. ◆우선 재판의 장본인인 심슨이 미국 청소년의 우상이던 미식축구 스타였다는 점, 그가 인종편견 때문에 부당한 의심을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 살해된 피해자가 미모의 백인 여자라는 점, 심슨이 사건 후 경찰의 소환에 응하지 않고 도주하다가 경찰과의 추격전 끝에 검거됐다는 점 등이 그 것이다. ◆담당 판사가 소수민족 문제에 관심이 없을 수 없는 일본 이민 2세라는 점과 하루 1만5천달러(약1천2백만원)의 수임료를 받는 초호화판 변호인단이 변호를 맡았다는 점 역시 신문·방송기자들의 입맛을 돋울만했다. 판결이 있던 날 법원 주변에는 유죄평결일 경우 흑인폭동에 대비해 삼엄한 경비가 펼쳐져 있었고, 실제로 소수민족 박해에 항의하는 흑인들의 「1백만인 행진」이 오는 16일로 예정돼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재판을 여기까지 끌고 올 수 있었던 것은 역시 1천만달러(약8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그의 재력 덕분이었다. 미국판 유전무죄인 셈이다. 범죄의 진실보다 변호사의 역량에 따라 유·무죄가 결정되기 쉬운 현실은 미국에서나 우리 사회에서나 사법제도의 맹점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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