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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8월(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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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8월(사설)

입력
1995.10.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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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청명한 날씨를 보이는 이번 가을은 그 절정기가 윤8월과 겹쳐 예식장을 비롯한 혼수업계는 오히려 찬바람을 맞고 있다고 한다. 또한 윤달이 닥치면 늘 그렇듯이 임신한 딸이나 며느리를 둔 많은 노부모들이 손자·손녀가 윤달에 태어나지 않을까 걱정을 할 것이다. 반면 최고의 수의로 꼽히는 안동포의 산지인 안동시 임하면 등에는 속설에 액이 없다는 윤달에 어른의 수의를 마련하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라 한다.윤달은 음력에서 달의 운동에 따른 한달의 기간이 29·53일 정도에 불과해, 열두달을 합하면 약 3백54일에 불과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농경문화 속의 선조들은 달의 운동과 해의 운동 모두가 그 당시로서의 「과학적 영농」을 수행하는데 필요불가결한 고려사항이었기 때문에 이같은 복잡한 시간의 규칙을 채택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조상들의 합리적인 지혜가 오히려 과학문명시대를 자처하는 후대들어 불필요한 미신적 행위로 잘못 계승되고 있지나 않은 지 걱정이다. 서기 2000년을 앞둔 우리 사회에 윤달이라고 굳이 결혼식을 미루고 출산을 걱정하는 등의 습관은 과학적 계산법으로서 윤달을 채택한 조상들의 지혜로움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우리는 서구에서 2백∼3백년 걸린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불과 30∼40년에 소화해 낸 압축적 역사를 살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잦은 이변, 사건, 사고를 겪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래서 한국사회는 뉴스거리가 유난히 많은 격동의 나라일 수밖에 없고, 그 속의 개인들의 인생은 길흉화복이 끊임없이 교차되는 상태를 벗어나기가 어려운 것이다.

고속발전에 대한 일종의 비용인 이같은 불안정과 혼돈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그 소극적이고 비합리적인 형태의 하나가 바로 이러한 미신적 형태인지 모르겠다.

물론 다른 사회의 전근대와 현대를 포괄하는 엄청난 격동의 삶을 살아온 우리로서는 전통적 문화유산에 깃들인 정신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보존하고 활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조상의 뜻을 제대로 해석하면, 우리의 행복과 불행은 우리가 살고 있는 역사적 환경에 대한 적절한 인식과 대응을 통해 조절 가능한 것이지 초자연적인 무엇엔가 운명을 맡겨서 조절되는 것이 아니다.

굳이 윤달의 의미를 새기려면, 덤으로 생긴 달이라 평소에 걱정되던 액운 따위도 신경쓸 필요없이 미루었던 일을 추진할 수 있는 시기로 생각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윤달에 대한 조상들의 워낙의 생각은 평소의 일들을 사소한 문제들에 구애받지 않고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으로 고전에 기록되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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