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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대원 아가씨/안명철(서울에서 본 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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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대원 아가씨/안명철(서울에서 본 평양)

입력
1995.10.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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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신만고 끝에 대한민국에 귀순한지 꼭 1년이 된다.한국에서 지낸 1년은 나의 일생에서 가장 큰 환희와 기쁨, 그리고 고통과 두려움의 한해였다. 그 중에서도 한국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머리를 온통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깡통을 차고 구걸하러다니는 거지가 많고 한강다리 밑에는 거적을 쓰고 자는 사람이 득실득실 한다더니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고층빌딩들과 짜증스럽게 많은 자동차들, 그리고 한국사람들의 우유빛 살결은 내가 이국땅에 왔는지 제 나라에 있는지를 분간키 어렵게 했다. 길 가는 사람들의 화려한 옷차림, 특히 여성들의 배꼽티와 미니스커트는 현기증이 나게 했다. 이렇게 차가 많고 고층빌딩들이 치솟아 있는 나라에서 천이 모자라 저렇게 입고 다닌단 말인가….

한번은 친구와 약속이 있어서 서울의 어느 다방에 갔다. 지리에 어두워 약속시간을 한시간이나 앞당겨 갔다. 다방 아가씨가 와서 『무슨차를 드릴까요』하고 물었다. 무슨 차가 있는지 몰라 옆 사람들이 마시는 걸로 달라고 했다. 아가씨는 『예, 쌍화차 말이지요』하고는 주방으로 돌아갔다. 잠시후 차가 나왔는데 한 모금 마시다가 혼이 났다. 맵기만 하고 무슨 맛인지 알 수 없어 『접대원 아가씨』하고 부르니 주위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쏠렸다. 히죽거리며 웃는 사람도 있었다. 다방 아가씨가 오더니 『손님, 전 접대원이 아니에요. 말조심하세요』하면서 노려 보았다. 『왜 그래요. 나는 그저 아가씨를 불렀을 뿐인데. 그런데 차가 왜 이렇게 매워요. 이거 고춧가루물 아닙네까』하고 물으니 아가씨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위 아래를 훑어보았다. 그리고는 알겠다는 투로 『아저씨 중국에서 왔어요』하고 묻더니 주방으로 들어가 주인과 뭐라고 수근거렸다.

마담과 얘기하던 아가씨가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는 것이 보였다. 아무 생각 없이 쌍화차를 한 모금 더 마셨을 때 갑자기 내 앞에 경찰관 2명이 나타났다. 『손님 신분증 좀 봅시다』 『왜 그러는데요. 난 잘못한 게 없는데…』 나는 주민등록증을 보여주었다. 그걸 보던 경찰관이 갑자기 내 두손을 잡더니 『경찰서로 갑시다』하며 나를 일으켜 세웠다. 깜짝 놀란 내가 『잘못한게 없는데 왜 이러십니까』하고 소리쳐도 경찰은 『가서 신원확인을 좀 해봅시다』하며 막무가내로 나를 끌고 나갔다.

다방에서 차를 마시던 사람들이 일제히 수근거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때마침 다방에 들어선 친구가 끌려 나가는 나를 보고 『왜 그러느냐』고 끼여들었다. 심상찮은 낌새를 챈 친구는 재빨리 자신의 신분증을 경찰에게 보여주며 『이 사람은 귀순용사요. 한국에 온지 얼마 안돼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소』하며 저간의 사정을 설명했다.

그제서야 경찰은 내 손을 놓더니 주민등록증을 돌려주며 『대단히 실례했습니다. 간첩이 차를 마시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와서…』하며 계면쩍은 표정을 지었다. 마담과 아가씨는 창피해 어쩔 줄 모르며 『쌍화차도 모르고 말도 이상하게 해서 간첩인줄 알았지요』 하면서 거듭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남북이 갈라져 서로 다른 체제에서 살아 말과 문화가 틀려져버린 분단의 비극이 빚은 웃지못할 해프닝이었다.

□약력

▲69년 함남 홍원군 출생

▲홍원농업전문학교 졸업

▲국가안전보위부 제7국(농장지도국)경비대 근무

▲함북 온성군 종성13호수용소, 회령시 22호정치범수용소, 평양시 승호구역 26호정치범수용소 근무

▲94년 귀순

▲저서 「그들이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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