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정치분야서 경제·군사위주 전환/안보리진출 등 국제사회 우리위상도 높여30일은 한국과 러시아가 국교를 회복한지 만 5년이 되는 날이다.
두 나라의 수교는 무엇보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국제정치의 역학구조를 바꾸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세계적으로 냉전구도의 틀이 깨지기 시작한 것이 큰 동인이 되었지만 한·러 수교는 남북한이 각각 미국과 일본, 소련과 중국이란 열강을 배경으로 힘의 대결을 펼쳤던 과거의 상황을 깨버렸다. 즉, 두 나라 수교는 한반도에서의 냉전종식을 위한 결정적인 계기로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지난 9월 러시아정부가 「조·러 우호협력및 상호원조조약」을 폐기하기로 결정한 것은 지난 5년간 양국관계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며 북한과 러시아간에 존재해온 냉전의 잔재를 해소한 사건이다.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한·러 수교는 대외관계의 틀을 변화시키고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을 현격히 높이는 데 기여했다. 90년9월30일 구소련과 수교한 이래 우리나라는 중국과의 수교등 동구권의 모든 국가와 정상적인 관계를 갖게 됐다. 또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을 가능케 해 한반도내의 평화유지에도 기여했다. 나아가 올해말에는 우리나라가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에 진출하게 돼 국제사회에서 지도적 역할을 맡게 됐다.
한국과 러시아는 수교이래 5차례의 정상회담과 10여차례의 외무장관 회담을 갖는등 관계 발전에 지속적인 노력을 펼쳐왔다. 특히 김영삼대통령은 지난해 6월 러시아를 방문, 두 나라가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을 「건설적이고 상호보완적인 동반자 관계」로 설정한 바 있다. 또 양국 정상은 이때부터 정치분야에서 양국 정상간의 핫라인을 설치, 양국 정상간 상시 협의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군사적 측면에서도 양국 국방장관이 94년4월과 올 5월 상호 교환방문해 양국간 군사및 방산기술 분야에서의 협력 강화방안을 논의하기에 이르렀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물론 양국간의 교역이 지난 5년간 3배이상 신장한 사실이 보여주듯 투자및 과학기술 분야의 협력이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같은 경제적 유대관계의 심화는 양국관계가 초기에는 정치지향적이었던 것에서 실질협력 중심의 관계로 전환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극동 시베리아지역을 하나의 경제권으로 한 지역협력까지 태동할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현실이다.
이렇게 볼 때 한·러 수교는 결국 「평화보장의 주춧돌」로서 우리에게 정치 군사 경제적 측면에서 이익을 가져다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우선 한반도의 지정학적 여건으로 볼 때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통일을 위해 러시아의 건설적 역할이 중요하다. 또 동북아 전체에 형성되고 있는 새로운 질서 속에서 우리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서도 한·러 관계의 발전은 앞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어떻게 보면 한반도 주변 4강을 중심으로 한 다변화 외교를 펼쳐가야 할 우리나라로서는 러시아와의 관계심화는 숙명적인 외교과제라 할수 있다.<신재민 기자>신재민>
◎경제교류 현황/작년교역 22억불 20위권으로 급속성장/수지는 적자… 첨단기술·자원중심 가속
수교이후 러시아는 1급적성국에서 20위권내의 교역상대국으로 변모했다. 그동안 러시아 자체의 변화도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구소련 붕괴이후 극심한 침체에서 허덕이던 경제가 올해를 고비로 인플레가 잡히고 루블화가치가 안정되면서 회생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냉전체제의 한 축으로 세계를 움직였던 러시아가 자본주의 도입과정의 진통을 견뎌내고 새로운 성장을 위한 기지개를 켜고 있는 것이다.
한·러 교역은 체제변환의 혼란 속에서도 꾸준한 증가세를 보여왔다. 92년 8억5천9백만달러 수준이던 교역량은 지난해 21억9천1백만달러로 늘었고, 올 8월말까지는 20억달러에 달하는 급증세를 기록했다.
그러나 철강 알루미늄 원목 펄프등 방대한 자원을 중심으로 한 러시아 수출이 강세를 보여 우리나라는 지난해 2억6천7백만 달러의 적자폭을 기록했다.
다만 컬러TV 냉장고등 전자제품과 초코파이로 대변되는 과자류가 선도하고 있는 한국의 수출도 적극적인 시장공략과 수입관세 50% 감면 관세규정에 힘입어 지난해 60% 이상 늘어난 9억6천2백만달러를 기록하는등 호조를 보이고 있다.
수교직후 잇따라 체결된 무역협정 투자보장협정등 경협에 필요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된 뒤 종합상사들을 필두로 한 기업들의 진출도 본격화했다.
7월말 현재 우리나라 기업의 투자현황은 허가기준으로 86건 9천3백만달러에 달했다. 89년 7월 진도가 모스크바에서 모피장사를 시작한 이래 무역은 물론 제조 서비스 수산업 목재가공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기업들은 러시아의 잠재가능성에 승부를 걸고 있는 것이다.
향후 양국의 경협은 러시아의 강점인 첨단기술과 자원등의 분야를 겨냥한 한국기업의 대규모 프로젝트로 가속될 전망이다. 한동안 경협의 걸림돌로 작용했던 경협차관 원리금 상환문제가 지난해 7월 원자재 방산물자등 현물상환결정으로 풀렸기 때문이다.
지난 8월 모스크바대학내에 3억6천만달러를 들여 사무실 백화점 호텔을 포괄하는 한·러 트레이드센터 건립이 가시화하면서 한국기업 진출을 위한 교두보가 마련됐다. 연해주 나홋카 자유경제지역내에 1백만평 규모의 한국 전용공단 건립이 추진되는가 하면, 사하(야쿠트)공화국의 가스유전 공동개발 문제도 방한중인 체르노미르딘 러시아총리의 28일 기자회견 발언으로 가닥이 잡혔다. 이같은 대규모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한·러관계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이재렬 기자>이재렬>
◎한국의 러시아인들/서울 동대문·부산 텍사스촌에 밀집/보따리장수·선원등 주로 단기체류
한반도 분단이후 우리가 가장 경계하던 러시아인들이 요즈음 서울과 부산의 시장거리를 누비고 다닌다. 구소련과 수교한지 5년동안의 두 나라 관계 변화의 상징이다.
법무부 출입국 관리사무소에 의하면 지난해 입국한 러시아인은 4만5천여명. 정확한 분류는 어렵지만 이중 1만여명은 외교관, 유학생, 연구기관 연구원, 상사 주재원등 장기체류를 목적으로 입국한 것으로 추정되고 나머지는 단기 입국이다.
이 때문인지 한국의 러시아인 사회는 단기 체류자를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동대문시장에서 의류 잡화등을 받아다 파는 보따리장수들과, 부산항에 내린 선원들이 독특한 러시아인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 사회는 의류구매등 정당한 상행위로부터 무기 밀매나 중고차 밀반출등 탈법적인 행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특성을 띤다. 대표적인 러시아인 사회는 서울 동대문시장 주변. 러시아인 보따리장수 단골 점포들은 러시아어 안내문을 내걸고, 인근 호텔과 여관들은 언제나 그들로 붐빈다. 부근에 생긴 러시아인 전용 레스토랑은 상거래나 여관등에 관한 정보교환의 장이다.
부산 동구 초량동에 있는 「텍사스촌」은 부산항에 들어오는 러시아 선원들이 모이는 작은 러시아인 사회. 그들이 숨겨 들여온 무기류 처분장소인 이곳은 중고차 밀반출 전초기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장기 거주자들의 사회는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 외교관이나 주재원 유학생등은 각각 10여명 단위로 끼리끼리 교류할 뿐이다.<이진희 기자>이진희>
◎러시아의 한인들/상주인구 모스크바에만 2,000여명/주먹구구식 진출등 시행착오 여전
러시아 TV에는 삼성 LG 대우등 국내 대기업들의 전자제품 광고가 자주 나온다. 모스크바 시내에서는 현대 대우 자동차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모스크바 상주 한국인도 외교관, 상사 주재원, 유학생등을 합쳐 약 2천여명에 달한다.
수교당시 한국 식당이라고는 북한인이 경영하던 평양식당 하나뿐이었으나 지금은 6개로 늘었다. 떡집을 비롯한 한국식품점들도 문을 연지 오래고 교민신문까지 나온다. 교회도 50개로 늘었고 한국 비디오 대여점에 여행사도 있다. 일주일에 두번 뜨는 대한항공도 만원일 때가 많고 잡화류를 팔러오는 한국인 보따리장수도 줄을 잇는다. 수교당시 하숙집같던 대사관도 번듯한 4층건물로 바뀌었고 외교관 수도 40명으로 늘었다.
외형적으로는 대 러시아 진출이 이렇게 활발하지만 개선해야할 문제점이나 부작용도 많다. 우선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전략부재로 주먹구구식 진출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대사관은 물론 상사 주재원이나 유학생들중에는 편법이나 무리수를 두는 경우가 있어 러시아인들의 반감을 사기도 한다. 일부 상사들은 시장개척을 명목으로 엄청난 물량공세를 펴 외화낭비를 하고 있으며 유학생중에는 돈으로 학위를 사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 때문에 러시아인들은 한국인들을 「봉」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따라서 앞으로 러시아 진출을 보다 내실화하려면 최소한 국가나 상사 차원에서 중 ·장기 전략을 세워 단계적으로 공략해야할 것으로 지적된다.<모스크바=이장훈 특파원>모스크바=이장훈>
◎인적교류 현황/러인 방한급증 작년 한국인 방러의 1.7배
90년 수교이후 한·러 양국민의 서로에 대한 관심도는 역전돼 가는 추세다.
이 추세는 지난 5년간 양국민이 상대국을 방문한 인적교류 현황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
러시아를 방문한 한국인은 90년 3천4백78명에서 91년 9천5백69명, 92년 1만4천9백81명으로 급증했다. 이는 수교직후 우리 기업및 관광분야의 러시아붐을 반영하는 것이다.
같은 기간 러시아인의 방한은 5천3백22명에서 7천2백18명, 9천95명으로 완만한 증가세를 보였다.
그러나 93년을 기점으로 방문객의 증가세는 뒤바뀌었다. 러시아인의 방한은 이 해에 2만4천3백29명으로 전년도에 비해 2.6배 늘어난 반면 한국인의 러시아 방문은 2만6백57명이었다.
94년에는 러시아인의 방한이 4만5천5백54명인데 비해 한국인의 러시아 방문은 2만8천36명으로 1.7대1의 비율을 보이고 있다.
외무부는 이같은 반전현상을 러시아 경제혼란의 심화, 러시아에 대한 우리 국민의 관심도 저하등을 원인으로 분석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는 지난해까지 러시아의 과학인력 3백98명을 유치했는데 현재 이중 1백여명이 각 기업등의 연구기관에 머무르고 있다.
민간단체로서는 「한·러경제협회」 「한·러극동협회」 「한·러친선협력회」등이 정기적인 교류를 하고 있다.<유승우 기자>유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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