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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만년 중 인민해방군 총참모장(뉴스 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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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만년 중 인민해방군 총참모장(뉴스 메이커)

입력
1995.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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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 신실세 산동방 견인차/당서열 앞선 국방부장 보다 먼저 호명 “주목”/한국전 참전 작전통… “강택민의 사람” 분류28일 폐막된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4기 5차 전체회의(14기5중전회)의 하이라이트는 당중앙군사위원회 인사였다. 군부내 신(신)실세그룹으로 꼽혀온 이른바 「산둥(산동)방」 이 군권 핵심 포스트에 진출한 것으로 특징지워지는 이번 인사는 장완녠(장만년·67) 해방군 총참모장이 당내 서열이 앞선 츠하오톈(지호전·66) 국방부장을 제쳤다는 점에서 또다른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장은 기존에 2명이던 중앙 군사위 부주석 자리가 4명으로 늘면서 지와 함께 부주석에 발탁됐는데 이미 해방군 총참모장을 지낸 군 상위서열의 지보다 앞서 호명됨으로써 군부의 새로운 실력자가 됐다.

공산권 인사의 경우 같은 직위라도 호명되는 순서가 앞선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현재 중앙 군사위 주석직은 국가주석이자 당총서기인 장쩌민(강택민)이 맡고 있고 정치국 상무위원인 류화칭이 상무 부주석이다. 나머지 한 명의 부주석은 장전(장진)이다.

장만년은 최연소 지휘관(대대장)으로 한국전쟁에 참가한 야전군 작전통이다. 산둥성 후앙코우(황구)의 빈농출신인 그는 린파오(림표) 계열의 팔로군 제4 야전군에서 본격적인 군생활을 시작했으며 문화혁명중에는 탑산영웅단 단장으로 마오쩌둥(모택동)을 추종하면서 모의 신임을 얻었다. 범문혁세력에 속해 물을 먹을 수도 있었을 그가 살아 날 수 있었던 것은 79년 베트남과의 국경전쟁이었다. 그는 전쟁이 발발하자 사단장으로 참가, 뛰어난 지략과 민활한 지휘력을 발휘해 덩샤오핑(등소평)의 눈에 들었다.

순조롭게 출세가도를 달리던 그는 89년 6·4 천안문 사태때 불분명한 태도가 문제가 되기도 했으나 군대내 계파간 세력균형 차원에서 중앙군사위 위원겸 인민해방군 총참모장에 발탁됐다.

장은 강주석이 군사위주석직을 등으로부터 넘겨받은 이후 첫번째로 행한 상장 인사(93년6월)에서 서열 1위로 진급, 강의 사람으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89년 천안문 사태 당시 그는 무력진압을 주장한 양상쿤(양상곤) 계열의 노선에 동조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가 민간인 살상 반대의사 표시하기 위해 아예 병원에 입원했었다는 설도 있다.

두번의 몰락위기를 넘긴끝에 이제 중앙 군사위 부주석이자 인민해방군 총참모장으로서 중국군을 움직이는 명실상부한 실력자가 된 장의 일거수 일투족에 내외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베이징=송대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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