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 4월 발발이후 3년반동안 계속되고 있는 보스니아 내전이 평화의 길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회교보스니아 크로아티아 신유고연방등 3개 교전당사국 외무장관은 26일 미국의 중재로 뉴욕에서 회담을 갖고 내전 종식과 자유선거에 의한 대통령 선출 및 공동의회·사법부 구성을 내용으로 하는 헌법적 원칙에 합의했다. 이로써 20만명의 사망자와 2백30만명의 난민을 양산한 「인간청소」의 유혈참극은 일단 멈춰지게 됐다. 지긋지긋한 전투는 끝나고 사람들은 생업을 찾아 일상으로 돌아가겠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전쟁의 상처가 아물려면 아직도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보스니아 평화협상 과정에서 우리가 주목할 대목은 냉전후 국지분쟁의 해결방식에 하나의 보기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교전당사국들은 이미 지난 8일 제네바회담에서 회교보스니아―크로아티아계연방이 영토의 51%, 세르비아계가 49%를 점유한다는데 합의함으로써 큰 테두리의 영토분할 원칙과 2개의 정치실체를 상호 인정한 바 있다. 남은 문제는 우선 휴전의 규칙과 이를 감시할 다국적군의 구성, 선거일정과 실시방법, 각민족 거주지역의 구체적 경계선 획정, 거주 이전의 절차와 자유보장 등이다.
전투가 중지되고 정치적 대원칙이 합의됐으므로 나머지는 사소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앞으로가 더 큰 일인지도 모른다. 회교보스니아측은 헤이그의 전범재판소에 제소돼 있는 세르비아계의 전쟁지도자들이 재판을 받기 전에는 자유선거를 실시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른 문제들도 모두 논의의 단계마다 평화합의 자체를 날려 버릴 수 있는 일촉즉발의 지뢰밭처럼 불안요소들이 내재돼 있다.
그러나 전쟁은 정치의 실패를 의미한다. 보스니아 사람들이 다른 나라같이 풍족한 삶을 원한다면 총칼을 들기전에 불만과 증오와 원한을 누르고 서로 껴안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된다. 이번 평화합의에서 보는 것처럼 휴전협상은 침략자를 응징하는 국제정의의 실현보다는 힘의 현실을 서로 인정하는 선에서 마무리되고 있다. 정치인의 분별없는 야망과 작은 땅덩이의 대가로 무수한 인명이 무고하게 희생됐을 뿐이다.
보스니아내전 역시 그 결말은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과 교전당사국의 실질적 전투력에 의해 판가름이 나고 있다. 보스니아와 한반도의 거리는 멀다. 그러나 보스니아내전의 해결방식을 북한도 주목하고 있을 것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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