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전선 최전방부대의 한 중사가 자신이 지휘하던 병사들의 무기를 빼앗아 월북한 사건은 이것이 비록 한 개인의 일탈행위일지라도 단순사건으로 넘기기 보다는 변화하는 남북관계시대에서의 군 기강을 점검해 보는 중요한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한효수(24)중사는 보도된 대로는 그의 아버지가 작업중 발목이 절단돼 입원해 있어 간병을 이유로 후방근무를 지원한 일이 있었고, 월북하기 직전에는 술을 마시고 소대장 국승기(25)중위를 찾아가 「북한이 홍수와 콜레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지만 내 처지보다는 나을 것」이라며 월북의사까지 밝혔다고 한다. 중사의 월북으로 소대장과 사병 7명이 구속되고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등 9명이 징계위에 넘겨졌다고 지난 18일 발표됐다.이 내용으로 보면 중사의 월북은 북한과 연관관계를 갖고 탈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만일 군의 고충처리절차가 적절했거나 군의 주적 개념이 확실했다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던 단순사건일 것이라는 추측을 짙게 한다. 군의 주적개념확립과 고충처리과정의 명료화는 군 기강을 좌우하는 양대요소이기 때문에 이 사건은 바로 군기상을 점검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는 주적개념의 문제다.
한국군은 현재 60만병력에 정부예산의 25%이상을 쓰는 엄청난 국민부담으로 형성돼 있다. 경제개발비(21%), 교육비(19%)와 같은 국가발전의 근간분야보다 훨씬 많은 예산을 국방력 유지에 투입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도 북한이 당장의 무력위협존재로 남한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경제는 인민을 굶겨죽일 정도로 악화된 상태이지만 군대는 여전히 3개월분의 식량 및 탄약비축을 한채 남한보다 우세한 공격무력을 유지하고 있다. 군사전문가들은 북한군사력은 적어도 단기적으로 볼때는 대단한 위협력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런 북한 인민군에 대해 한국군이 강력한 주적개념을 잃고 있다면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가장 강력한 주적개념을 지녀야 할 일선부대의 기간병이 「내 처지가 북한사정보다 못하다」고 한탄하고 있을 정도라면 군 전체의 북한에 대한 주적개념이 의심될 만한 것이다. 6공이후 사회일반은 남북대화를 추진해 왔고 일부에서는 보안법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해 북한에 대한 적대감이 감소돼 왔다. 그러나 군은 그래서는 안된다.군은 주적개념이 없으면 군기가 빠지게 되고 군기가 빠진 군대는 존재가치가 없어진다. 남북대화가 어떻게 되어가든 국가예산의 20%이상을 쓰면서 60만군을 유지하고 있는 이상 한국군은 북한에 대해 명백한 주적개념을 가져야 한다. 지난 3월 러시아 국방장관 그라초프가 미국방부를 방문한 일이 있었다. 그는 펜타곤건물에 들어서면서 미국방부의 좌표위치를 한시도 잊은 일이 없었는데 좌표만으로 알던 국방부를 실제 방문하게 되어 감개가 무량하다고 말한 바 있다. 군은 적의 좌표에 온 신경을 쏟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둘째는 군 복지문제이다. 특히 하사관 복지를 심각히 고려해야 한다. 전쟁이 나면 하사관의 역할이 전투의 승패를 좌우한다. 뿐만 아니라 비전시에도 하사관은 일반병들과 내무반을 같이 쓰면서 병사들의 실생활을 지도하기 때문에 이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병이 장교를 구타한 사건도 장교와 병사이에 당연히 완충역으로 있어야 할 유능한 하사관이 없어 그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었다. 군의 허리인 하사관복지를 어떻게 개선할 것이며 월북중사의 경우와 같은 개인고충을 접수할때 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명백한 규준을 이번 기회에 확립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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