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문장」지 폐간에 비분삭이던 심정 그대로 담아지훈의 성품은 실로 다채로운 모습을 지니고 있다. 호방한가 하면 치밀·섬세하고, 강직하면서도 질박한가 하면 온아하면서 순후하다. 엄격·분명한가 하면 너그럽고, 휘고 감기는 멋이 있는가 하면 부지런하고, 소탈한가 하면 근엄하다. 그래서 함부로 소인배들이 접근하지 못하였다. 이것은 그가 언제나 시비, 선악과 미추를 판별하는데 준엄했고, 이 판별에 의한 행동이 또한 과감하였기 때문이다. 이로 보면 지훈은 진실로 대인의 금도와 추상같은 절도를 함께 지닌 인격자요 시인이었다. 나는 지훈의 그러한 풍모가 깃든 작품의 하나로 「밤길」을 애송한다.
이 작품은 지훈이 오대산 월정사에 있던 1941년 무렵에 씌어진 것이다. 지훈이 이 작품을 쓰게 된 동기를 말하기 전에 먼저 그가 월정사에 가 있게 된 전후사정을 잠시 언급해 두어야 할 것 같다. 지훈은 1941년 4월에 혜화전문학교를 갓 졸업하고 오대산 월정사에서 개설한 불교강원의 외전 강사의 직을 맡아 입산했다. 이때부터 이른바 스스로 비승비속이라 자처하는 독특한 사회생활이 시작된 셈이다. 그는 본래 학생시절부터 불교에 조예가 깊었으나 이 월정사에서의 1년은 그 사색의 폭과 깊이를 크게 더해 준 것 같다. 이때 한복 위에 흰 무명 두루마기를 입고, 손에는 염주를 든, 그리고 그 특유한 굵은 테 안경을 쓴채 월정사 뜰 9층 석탑 앞에 비스듬히 서서 찍은 당시 지훈의 모습을 담은 사진 한 장이 남아서 전해진다.
이렇게 월정사에서 세속의 번민을 조금이나마 떠나 있던 지훈에게 뜻밖의 소식이 한 가지 전해져 왔다. 당시의 우리 문학에 대들보 노릇을 하던 「문장」지가 일제의 조선어 말살정책에 의해 폐간된다는 소식과 함께 그 마지막 호가 배달되어 온 것이다. 지훈 자신이 「문장」지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던 데다가, 이 문학지가 우리 말과 문학을 위해 기여해 온 바가 워낙 컸기 때문에 그 폐간 소식에 접한 지훈의 상심은 보통 큰 것이 아니었다.
지훈은 우리 말과 시의 터전에서 또 한 모퉁이를 잃은 이 비분에 월정사 아래 시오리 쯤의 주막에 내려가 통음을 했다 한다. 그리고는 돌아와서 이 작품을 쓴 것이다. 이 작품에는 그러한 비분을 삭이면서 인생을 지긋이 바라보는 지훈 특유의 안목이 깃들어 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시골영감님과 주막집색시는 현실의 고통스러운 상황과 동떨어진 위치에 있는 소박한 인물들이다. 시인은 그들의 순박한 삶과 인정을 느끼면서 짐짓 세속의 정취에 젖어들어 본다. 그것은 아마도 참담한 현실의 긴장 앞에서 느끼던 마음의 고통을 잠시 늦추어 보려는 것이리라.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심리적 균형과 위의마저 내버리지는 않는다. 이 작품 마지막의 「장명등 달아 놓은 술집을 나오며/양산도 한 가락을 날리어 본다」는 구절에 그러한 자기절제가 잘 나타난다. 나는 이 구절을 생각할 때마다 지훈의 흰 두루마기자락이 눈 앞에 선하게 떠오른다. 그리고는 엄격함과 풍류가 조금의 어색함도 없이 어울린 그의 풍모를 생각하고는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