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고초속에서 권위정권시절을 민주투쟁의 일념으로 견뎌왔었다는 현정치권의 실세중 한 사람이 즐겨 쓰는 말이 있다. 「칠흑같이 캄캄한 밤」을 헤맨끝에 드디어 오늘과 같은 빛을 찾았노라는 것이다.그런 고초와 어둠속에서 그들 「민주세력」들은 과연 뭘 길잡이 삼아 끝까지 용기를 잃지 않고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곰곰 되돌아 짚어 보노라면 뭔가 오늘의 여러 상황들에 대한 시사점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의정사상 유례없는 제명과 장기 연금을 당하며 목숨을 건 단식도 불사했던 오늘의 김영삼대통령은 당시 그런 어둠을 헤쳐오는데 의지했던 특유의 길잡이를 이렇게 표현한 바가 있었다.
―감이지요. 감이라는게 있다는 느낌입니다. 설명은 안됩니다. 하지만 피부에 닿는게 있습니다.
이렇게 시작됐던게 바로 「감의 정치」라는 것이다. 그 칠흑같은 세월속에서 한줄기 민주화라는 빛에 대한 직감이야말로 더할나위없는 나침반이요 살아남기의 반려였던 것이다.
그런데 민주화·문민화의 일등공신이라 할수도 있는 그 「감」이란게 오늘에 와서는 오히려 일말의 혼란과 눈치보기 및 잦은 시행착오의 근원이 될수도 있음을 우리는 여러 곳에서 목도하게 된다. 「감」이라는게 정치에서뿐 아니라 온갖 행정분야에서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잣대로 은연중 자리잡아 심술마저 부리고 있는 것이다.
최근 빚어졌던 당정간의 종합과세공방, 수재지원문제등 대북정책의 표류, 신도시발설과 취소해프닝, 흔들리는 세정과 세대교체 및 물갈이의 모호한 기준등이야말로 그런 심술부리기의 나타남이 아닐까 여겨진다.
행정부는 정치권은 물론 전체 금융기관에마저 이심전심으로 퍼졌던 종합과세기준을 오로지 「감」을 좇아 일주일만에 바꿨는가 하면 정치권은 그런 「감」도 모른체 행정부를 대갈했다가 그만 꼬리를 사리는 촌극이 빚어졌었다. 신도시구상을 발설했던 각료는 상층부의 감과 여론앞에서 「신도시란 말 자체를 언급한 일이 없다」고 발뺌했다.
그런가 하면 이같은 일련의 혼란에 당황한 총리는 내각에 자숙을 당부했는가 하면 각 부처가 중요정책을 발표하기에 앞서 총리실에 사전에 알려주기 바란다고까지 지시했다. 총리실이 「인포메이션 센터」가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였다. 인포메이션 센터라는게 뭔가. 말을 바꾸자면 「감」잡기 본부라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이같은 「감」의 정치, 「감」의 행정이 지닌 문제는 크게 두가지가 아닐까 생각된다. 하나는 「감」의 본질문제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감」을 헤아리기가 왜 그렇게 어려운가하는 정치와 행정의 절차와 제도문제일 것이다.
오늘과 같은 민주화·전문화·세계화시대의 한가운데서 잣대노릇을 제대로 하려면 「감」이란 것도 이제는 최고수준의 전문성부터 갖춰야 한다. 그리고 「감」의 본질이란 것도 개인의견이 아니라 민주적 절차와 제도를 거쳐 확인되고 검증된 국론이나 공론이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다.
「감」의 본질에 대한 혼란의 와중에서 또하나 돌출하고 있는게 얼굴정치·탤런트정치에의 기울어짐이 아닌가 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배역에 따라 곧잘 망나니도 되고, 「한명회」도 되고, 전원일기의 농촌가장도 될 수 있는 소위 「천의 얼굴」을 가진 사람들을 「새 시대 새 인물」로 등장시키고 있는게 주목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지금 재계에서는 첨단업종을 중심으로 국내외 석·박사급등 각 분야별 전문가와 고급두뇌 모시기경쟁을 펴고 있다고 한다. 경제는 2류인데 행정과 정치는 3·4류라는 소리를 더 이상은 듣지 말아야 한다.
심리학에서 감각과 지각은 구분되는 개념이다. 감각은 자극에 대응하고, 지각이란 뇌의 복잡한 기능을 거쳐 감각을 고도의 의식으로 승화시킨 것으로 곧잘 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각 분야의 전문가로 키워내어야 할 우리 후세들에게 오늘의 「감」의 정치와 행정이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도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겠다.<수석논설위원>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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