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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같은 날의 오후/김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영화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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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같은 날의 오후/김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영화평)

입력
1995.09.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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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공간」 옥상에 그려낸 여성군상/치밀한 구성·연기력 돋보여/지나친 희화화 긴장감 아쉬워「개같은 날의 오후」(감독 이민용)는 대부분 옥상에서 진행된다. 도시빌딩의 옥상이란 흥미로운 공간이다. 건물소유자의 입장에서 볼때는 별로 쓸모가 없지만 하루종일 사무실에 갇혀있는 고용자들에겐 옥상이 제공하는 확트인 전망은 다른 시점으로 삶을 바라볼수 있는 사유공간이다. 하지만 그 공간은 또 위태롭다. 간혹 자살이 일어나는 장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옥상의 이러한 이중적 성격은 정치적 알레고리까지 덧붙여 이미 「바보선언」과 「칠수와 만수」등을 통해 전달된 바 있다. 「개같은 날의 오후」는 자기 아파트옥상에서 사흘을 경찰과 대치하는 열명의 여자들을 다루면서 폭력, 남편의 외도, 과중한 여성노동 그리고 매춘같은 여성문제들을 건드리고 있다.

사흘동안 열명의 각기 다른 직업과 학력, 삶의 방식을 가진 여자들은 옥상을 열린 마당처럼 활용하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에 도달한다. 여기에 여성문제에 적극적인 TV 여기자의 등장과 좀도둑의 에피소드는 제한된 공간에서 전개되는 영화가 가질수 있는 한계를 극복하려는 장치들이다.

열명의 여성들이 한남자를 우연적으로 살해한다는 설정은 사실 파격적이다.일종의 비현실성을 지니고 있는 이러한 사건을 영화속에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구성력과 연기력이 필요한데 이영화는 일단 그 면에서는 성공하고 있다. 동기는 충분히 부여되어 있고 한사건이 또다른 사건을 연쇄적으로 끌어옴으로써 관객들은 흥미진진해 한다. 이러한 재미는 사실 한국영화속에서 오랫동안 사라진 것이었다.

그러나 치밀한 구성력과 연기력, 또 예외적인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그 이상 나아가려 하지 않는다. 사회적 피해자로 설정된 여성들이 모두 설득력을 갖춘 자신의 이야기를 갖고 있는데 반해 가해자를 지나치게 희화화해 옥상여자들과 지상에 있는 경찰의 대립구도가 긴장감을 주지 못한다.

우리의 가부장제나 공권력이 이렇게 허술한 것이라면 애초 초반상황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대립구조 자체의 미약함이 이 영화의 발생근거 자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은 이런 생각이 전혀 들지않을 만큼 「개같은 날의 오후」는 충분히 재미있다. 가을날 오후 한국영화가 오랜만에 펼치는 한바탕의 난장을 구경하는 일은 신나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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