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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의 교훈(김경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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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의 교훈(김경원 칼럼)

입력
1995.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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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보스니아내전도 끝이 나는 것 같다. 최근 미국이 내놓은 평화안을 기초로 협상이 가능할 것 같다는 소식이다. 사실 냉전이 종식되면서 유고슬라비아가 붕괴되고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인들 간의 갈등이 치열하게 되는 것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그 원인도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어떻게 결론이 날 것인가 궁금하게 생각했다. 유엔은 평화를 달성할 수 있을까? 미국은 끝내 개입하지 않을까? 유럽의 선택은 무엇인가?우리 입장에서 보스니아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냉전종식이후 국지전이 어떻게 결정되는가 하는 문제는 바로 우리의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국지분쟁이 다 같은 것은 아니지만, 그 기본에 있어서는 참고할 만한 교훈이 있다고 본다.

보스니아의 첫째 교훈은 결국 이 문제도 미국의 역할을 통해서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는 점이다. 클린턴대통령은 처음부터 미국의 개입을 거부해 왔다. 보스니아는 미국안보에 위협이 되지도 않는데 미국이 직접 개입한다는 것은 국내정치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미국없는 유럽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유럽의 언론들은 보스니아에서 일어나는 잔인한 행동들을 생생하게 보도했지만 유럽의 지도자들은 햄릿처럼 「행동할 것인가 안할 것인가」 하는 고뇌의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 프랑스의 시라크대통령이 한때 프랑스 단독으로라도 행동할 것 같은 자세를 취하는 듯했지만, 결과는 오히려 미국이 적극적으로 나오지 않으면 유엔군에서 프랑스군을 철수하겠다는 위협으로 끝나고 말았다. 유럽이 행동을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은 반드시 오늘의 유럽지도자들이 무능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1914년의 유럽전쟁은 미국의 개입을 통해서 종결될 수 있었던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유럽은 미국을 필요로 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1940년의 전쟁에서도 반복되었고 냉전을 통해서도 확인되었다.

둘째 교훈은 불행히도 유엔은 무능하다는 점이다. 물론 유엔은 난민구조등 유익한 일을 한 것이 사실이지만, 「평화를 만드는(PEACE―MAKING)」 능력은 없었다. 유엔군은 사명도 불분명했고 유엔사무총장도 리더십을 발휘했다고는 할 수 없으며, 유엔의 현지 책임자 아카시도 문제해결을 위한 어떤 구체적 구상을 보여주지 못했다.

유엔은 구조적으로 한계가 있다. 유엔 자체의 「힘」이 없기 때문에 회원국들의 정치적 의지를 하나로 집결시키지 못하는 한 유엔은 어떤 결정적 역할도 하기 힘들게 되어 있다. 그러나 냉전이 종식된 상태 하에서 유엔은 조금 더 효과적인 기능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유엔안보리의 상임이사국들과 사무국의 책임자들은 앞으로 유엔의 안보기능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생각을 해야 한다.

보스니아의 세번째 교훈은 냉전 이후에도 평화는 「힘의 균형」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보스니아평화안도 지금까지의 군사적 대결의 결과를 사실로 시인하고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존하는 「힘의 균형」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선 세르비아계는 보스니아내전에서 우세한 군사력으로 제일 많은 영토를 획득했다. 미국의 역할도 군사력에 의존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다만 미국은 자신의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은 대신 크로아티아군을 간접적으로 지원해 주었다. 세르비아계 지도자 카라지치는 유엔 안전지대 스레브레니차와 제파를 정복했는데도 유엔의 반응이 희미한 것에 고무되어 비하치까지 공격함으로써 크로아티아군의 군사행동을 위한 구실을 제공해 주었다. 결과적으로 크로아티아군은 크라히니빈에서 세르비아계를 축출함으로써 안정화할 수 있는 지도의 윤곽을 만든 셈이다. 세르비아계는 또 다시 사라예보의 한 시장을 포격하고 많은 민간인을 살상함으로써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군이 세르비아계에 밀도 있는 공격을 개시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미국은 동시에 홀브룩 국무차관보를 파견하고 보스니아 내에 세르비아 자치지역을 인정하는 평화안을 제안했으며 세르비아대통령 밀로세비치는 나토의 힘이 개입된 상태에서 홀브룩의 안을 받아 들이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보스니아의 가장 근본적인 교훈은 전쟁은 정치의 실패에 기인한다는 점이다.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회교도들은 결국 「더불어 사는 지혜」가 없었기 때문에 그처럼 무참한 폭력의 제물이 된 것이다. 민족과 종교의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서 평화롭게 이해관계를 조정해 갈 수 있을 때 비로소 안정된 평화는 가능하다. 일단 보스니아전쟁은 끝이 나는 것 같지만, 그 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다양성과 질서를 조화할 수 있는 정치력을 발전시키지 못하는 한 발칸지역의 비극은 아직 막을 내렸다고 볼 수 없다.<사회과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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