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반응/악화일로 양국관계 염두 신중/「발칸사태 미 독주」 러 불만 고려/정치적 동기 가능성 배제주력미국정부는 모스크바주재 자국대사관에 대한 총류탄 공격 사건이 최근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양국관계에 또 다른 악재가 되지 않도록 이번 사건의 정치적 의미를 최소화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클린턴미행정부는 이번 사건을 「심각한 테러행위」로 규정했으나 이것이 최근 점증하고 있는 러시아의 반미 분위기와는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니콜러스 번스 국무부대변인은 13일 정례 브리핑을 통해 범인이 「정신병자이거나 미치광이」일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했다. 이는 이번 사건이 보스니아사태와 관련한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을 미리 배제하려는 의도다.
모스크바주재 미대사관의 대변인도 사건 직후 『이번 사건이 양국관계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서둘러 규정했다. 백악관은 아예 사건 경위에 관한 언론 브리핑을 국무부로 떠넘겼다. 마이크 매커리 백악관대변인은 『국무부대변인이 (이번 사건에 관해) 가장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으니 그 쪽에 문의해 보는 게 좋겠다』며 발을 뺀 것이다.
미행정부 관리들의 신중한 반응은 보스니아 세르비아계에 대한 미국의 공습으로 심기가 불편한 러시아정부를 필요 이상으로 자극하지 않으려는 배려에서 나온 처신으로 풀이된다. 번스국무부대변인은 『러시아정부의 신랄한 대미비난이 이같은 테러를 조장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러시아정부와 이번 사건을 연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러시아정부가 즉각 유감을 표명하고 수사에 진력하고 있는 사실을 들며 이번 사건이 양국관계에 별 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러시아 정부가 최근들어 예상외로 대미 비난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상황에서 발생했다. 백악관은 러시아정부가 최근 나토의 공습을 세르비아계에 대한 「학살」로 규정한데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클린턴대통령은 12일 『나토의 세르비아계 공격이 학살이라니 말도 안된다』면서 『동맹국들이 민간인 피해를 줄이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정부는 선거를 앞둔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이 극우파의 공격에 밀려 대미 비난의 수위를 높이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도 13일자 사설에서 옐친의 미국비난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라고 반박하면서도 『선거를 수개월 앞둔 러시아정부가 극우파로부터 조소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현실을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발칸사태에 관한 미국의 일방적인 독주에 극도의 불만감을 표시하고 있는 러시아 지도부를 무마하기 위해 스트로브 탈보트 국무부부 장관을 모스크바에 파견했다.<워싱턴=이상석 특파원>워싱턴=이상석>
◎러시아 분위기/커가는 반미·반서방 정서 상징/“개혁지원 않고 애물취급” 반감/친미견지 옐친까지 정책선회
13일 발생한 모스크바주재 미대사관에 대한 총류탄 공격사건은 최근 악화일로에 있는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를 상징한다.
이 사건은 러시아가 최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보스니아 세르비아계에 대한 공습에 강력히 반발하는등 반미·반서방적인 태도를 뚜렷하게 보이고 있는 가운데 터졌다. 91년 러시아공화국 출범직후만해도 소수에 불과했던 반미·반서방의 목소리가 이제는 러시아 사회의 주류가 되었다.
여기에는 개혁정책의 부작용과 미국등 서방의 대러시아지원 미비, 국제사회에서의 초강대국 지위상실등의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그나마 친미노선을 견지해 왔던 크렘린궁마저 최근들어 정책선회를 하기에 이른 것은 오는 12월 총선을 앞두고 극좌에서 극우까지 모든 정파들이 이같은 사회분위기를 배경으로 하나같이 민족주의적 색채를 들고 나섰기 때문이다.
보스니아사태와 관련, 러시아는 유엔안보리에서 나토의 공습에 반대하는 결의안을 상정하려 하고 있으며 세르비아계에 인도적차원에서 비행기 15대분 물량의 원조를 하는 등 서방측과는 정반대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 언론들이 연일 반미적인 기사와 논설을 게재하고 있는 가운데 친서방적인 유력 일간지 이즈베스티야마저도 얼마전부터 논조를 바꾸었다.
이처럼 전반적인 러시아의 반미 ·반서방 분위기는 무엇보다 미국측의 「오만한」자세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러시아측의 주장이다. 즉 소련붕괴이후 진정한 동반자로서 러시아의 개혁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할 미국이 그동안 말로만 지원 운운했지 행동은 없었다는 것이다.
또 여전히 세계 제2위의 군사력을 지닌 러시아를 미국은 「협의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통고의 대상」으로 간주해 왔다는 것이 러시아의 분노섞인 불만이다. 러시아가 더 이상 잠재적인 적국이 아니라고 여겼다면 그에 상응한 대우를 해주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한 미국전문가는 러시아가 자국 원자력산업의 회생을 위해 이란에 원전을 판매하려는 것마저 미국이 극구 반대하는 것은 전세계 원전시장을 독점하려는 의도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미국이 이같이 러시아를 무시하면서 「팍스 아메리카나」정책을 계속 추진할 경우 결국 러시아내의 민족주의 세력이나 공산당을 도와주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향후 러시아의 대외정책은 철저히 국익위주로 전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탈냉전시대에 동반자적 국제관계가 형성될 것이라는 전망과는 달리 미국과 중국에 이어 미국과 러시아의 대립이 심화되면서 국제질서는 「차가운 평화(COLD PEACE)」라는 새로운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다.<모스크바=이장훈 특파원>모스크바=이장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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