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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신 전 아르헨대통령에 듣는다(지구촌시대의 문화변동: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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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신 전 아르헨대통령에 듣는다(지구촌시대의 문화변동:4)

입력
1995.09.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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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정치·국민신뢰가 민주화초석”/“과거 군정 인권탄압인사 응징 한국에도 참고될것/경제난·보수화 물결속 방황하는 젊은층 안타까워”라울 알폰신은 선거를 통해 남미의 군부정권을 최초로 종식시킨 아르헨티나 문민 대통령이다. 83년 12월 취임하자마자 그는 결연한 의지로 군부의 학정과 인권유린을 단죄한 것으로 유명하다. 8년간 3만여명의 민간인을 납치, 학살한 군부정권의 「추악한 전쟁」과 관련해 군장교 4백여명을 기소, 단죄했다. 이중 전직 대통령 2명은 종신형을 받았다. 군부가 이에 반발해 반란을 일으키자 그는 『민주주의는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 쿠데타의 시대는 끝났다』며 단호히 대처, 결국 주동자들의 항복을 받아냈다. 하지만 강경대응만을 고집한 것은 아니었다. 또 다른 쿠데타가 일어나자 헬기로 군기지에 날아가 담판짓고 반란군과 함께 「화해의 시대 도래」를 천명했다. 국민은 열광했고 그는 「건국의 아버지」가 됐다. 그러나 집권말기에는 사상 최악의 인플레등 경제문제로 고전했다. 89년 5월 선거에서 카를로스 메넴 현대통령이 당선되자 그는 임기를 5개월 앞당겨 7월 사임했다. 현재는 제1야당 급진당의 총재이다.

알폰신 전대통령과의 회견은 지난달 24일 상오 8시30분부터 부에노스아이레스 중심가 산타 페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2시간 동안 이루어졌다.

그는 이 자리서 자신의 통치경험을 바탕으로 『민주화 과정에 있는 나라들은 투명한 민주제도를 만들고 사회정의 실현을 통해 국민의 자발적 참여와 협조를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군도 문민정부에 복종해야

―대통령 재임기간에 인권억압을 주도했던 군 고위 장성을 응징한 정책은 지금도 타당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민주화 시대의 군부는 합헌적 문민권력에 복종해야 합니다. 군부는 스스로의 행동 때문에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잃었습니다. 과거의 잘못을 다루는데는 세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독재시대의 인권억압을 잊는 것입니다. 망각의 길이지요. 실제로 많은 나라들이 이 길을 걷고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직접 간접으로 범죄에 개입된 모든 사람을 기소해 처벌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가능할뿐더러 역사적으로도 그같은 전례는 없습니다. 마지막은 그야말로 전범이 되는 인권사범을 골라 응징하는 일이지요. 우리는 이 길을 택했습니다.

우리의 경험은 과거 청산문제로 고심하는 한국이나 동구 국가에 유용할지도 모르겠군요. 우리에게는 이것 말고 다른 길은 없었습니다. 도덕적 상대주의로는 참된 민주주의를 건설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신념입니다. 우리의 정책은 최선의 것이었지만 위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해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꽤 바뀌고 있는 것 같습니다. 85년 인권관련 재판에서 종신 징역을 선고받았던 전 해군사령관 에밀리오 마세라가 지난달 7일 TV에 나와 군부의 인권억압을 전면 부정하는 말을 두 시간이나 계속했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십니까.

『정치와 사회가 보수화하면서 국가의 기강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누가 그의 말을 믿겠습니까. 이미 백일하에 모든 것이 입증되었는데요. 단지 이런 일이 생긴 것은 메넴 현대통령이 인권억압 사범을 쉽게 사면했기 때문입니다. 마세라를 인터뷰한 두 언론인은 성향이 의심스럽기도 하지만 큰 실수를 범한 셈입니다. 재판은 법의 지배를 뜻하는 것이며 정의는 끝까지 지켜져야 합니다』

○억압으로부터 해방 최우선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실종자 조사위원회」를 구성, 군부독재하에서의 의문사를 조사토록 했는데 위원회의 활동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존경스럽고 큰 자랑으로 생각합니다. 그들은 헌신적으로 훌륭한 일을 해냈습니다. 진실의 복원은 민주주의의 기초가 아닐까요. 아르헨티나 온국민이 이를 환영했습니다. 그들이 펴낸 보고서 「눈카마스」는 우리 시대 양심의 상징이자 보루입니다』

―집권 기간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일은 무엇입니까.

『일부 군대가 세번에 걸쳐 저항을 하지 않았습니까. 이때 시민 청년 노동자 중산층이 들고 일어나 군부대를 포위하고 문민정부를 지지해준 것은 큰 감동이었습니다. 나는 나를 뽑아준 국민에게 등을 돌리는 일은 결코 하지 않았습니다. 형법과 사법부의 개혁으로 인권을 충실히 보장하려 했습니다』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어떤 미래사회를 건설하려고 생각했습니까.

『당시 사람들은 불안과 공포를 느꼈습니다. 과거의 악몽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억압으로부터의 해방과 자유와 화합의 공간을 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미 하버드대학의 헌팅턴교수처럼 엘리트주의를 내거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자유와 참여 그리고 연대가 새로운 사회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당시 생각이 지금 얼마나 실현됐다고 느끼시는지요.

『솔직히 곤혹스럽습니다. 경제 때문이지요. 우리는 복지국가를 건설하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외채와 인플레가 우리의 발목을 잡았지요. 우리는 국제 금융기구가 제안하는 정책을 그대로 따를 경우 실업등으로 사회경제적 격차가 커질 것을 우려했습니다. 이것은 군사정권의 유산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못지않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불행하게도 아르헨티나는 오늘날 이런 문제에 부딪치고 있습니다』

―보수화하는 사회분위기가 젊은 세대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젊은 세대는 80년대의 변화를 이끈 강력한 힘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욕구불만에 차 있지요. 경제사회 정책은 보수화하고 대학 및 교육투자는 줄었습니다. 참여와 연대 대신 아미노적 행동이 늘고 있지요. 민주주의는 대화의 정치 아닙니까. 좌우의 격돌보다는 이웃과 반대자의 의견을 경청하는 문화가 필수적이지요. 이것이 무너지면서 젊은 세대가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있다고 봅니다』

―권력이 너무 대통령 개인에게 집중된 것은 아닌지요.

『강력한 대통령제의 부작용은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의회 중심의 내각제가 바람직하다고 봅니다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움이 많지요. 작년의 헌법개정에서 나는 대통령의 비대한 권력을 줄인다는 조건으로 협상에 참여했습니다. 그 결과 의회와 사법부의 자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헌법이 개정되었지요』(그러나 알폰신은 이 협상으로 메넴 대통령에게 재선의 길을 열어 주었다는 점에서 큰 정치적 상처를 입었다)

○교육도 민주화에 필수조건

―80년대 민주화 도미노 현상의 선봉에 섰던 장본인으로서 세계 도처의 민주화 과정에 있는 나라들에 어떤 충고를 하시겠습니까.

『나라마다 독특한 사정이 있기 때문에 일반화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경험에서 보면 세가지가 중요합니다. 첫째는 민주제도를 투명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부정이나 비리를 없애야 하고 책임져야 할 사람이 책임을 지도록 하는 국가 기강 확립이 필수적입니다. 둘째는 사회정의를 실현해 국민의 자발적 참여와 협력을 얻는 일입니다. 셋째는 교육입니다. 교육은 과학기술 발전의 조건일 뿐 아니라 민주제도 정착에도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80년대 말의 엄청난 경제위기로 인해 이 목표를 제대로 성취할 수 없었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합니다』

―마지막으로 한국과 동아시아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동아시아는 우선 거대한 경제지역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세계화 시대에 우리는 동아시아와 남미, 또는 한국과 아르헨티나 사이에 거시경제적 공존의 틀이 정착되기를 기대합니다. 무역 당사자들 사이에 어느 정도 평형과 정의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런 의미에서 보다 활발한 상호교류가 필요합니다』<글=한상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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