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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 텔레비전 시대/박명진(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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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 텔레비전 시대/박명진(한국논단)

입력
1995.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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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연휴기간에 텔레비전을 보다가 희한한 프로그램을 만났다. 60∼70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출연해 짝짓기를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서슴없이 요즘 젊은이들의 춤도 추는등 자기의 장기나 매력을 한껏 과시하고 마주보는 할머니 혹은 할아버지들중 마음에 드는 이성을 골라 번호를 누르는데 상대가 일치하면 짝짓기에 성공하는 것이다.성공 후에는 아마도 데이트를 하게 되는 것같았다. 일종의 텔레비전 중매같은 것이었다. 평소 이 프로그램에는 청춘남녀들이 나와 짝짓기를 하곤 했는데 추석이라고 할머니 할아버지로 출연자층을 잠시 바꾼 것같았다. 진행자의 질문 중에는 할머니더러 첫 키스는 언제 누구와 어떻게 했느냐는 것도 있었고 그 질문에 할머니는 서슴지 않고 결혼 첫날밤 이불 속에서라고 당당히 답변하기도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그들 세대와는 동떨어진 신세대흉내를 강요하면서 재밋거리를 만들려고 하는 이 프로그램은 보기에 안쓰럽고 난처하기 짝이 없었다.

요즘의 텔레비전에는 시청자참여 프로그램들이 늘고 있다. 평범한 보통의 시청자들이 퀴즈나 노래자랑같은 데 출연해서 상식이나 재주를 자랑하기, 토론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기, 사생활·체험을 공개하기, 비디오를 직접 제작해 보내거나, 자신이 프로그램 속에서 직접 광고같은 프로그램의 제작을 시도해 보여주기등 예전같은 상징적 참여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생산적인 시청자참여의 프로그램들이 즐비하다. 이렇게 텔레비전이 예전처럼 엘리트나 직업적인 연예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보통사람들의 출연도 흔해지다 보니 앤디 워홀의 말처럼 요즘은 「누구나 15분 정도는 유명해질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달라지고 있는 텔레비전문화를 일컬어 움베르토 에코는 네오 텔레비전이라고 명명하였다. 네오 텔레비전이란 조형적으로나, 구성방식, 내용에 있어서 포스트모던 문화적 성격을 지니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발달현상을 말한다. 네오 텔레비전의 핵심은 무엇보다 엘리트출연자나 직업적인 연예인 중심의 프로그램 편성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버라이어티 쇼」같이 대부분이 환상적인 내용으로 꾸며져 있고 시청자에게는 일방적으로 보고 즐길 것만을 유도하는 유형의 프로그램에서 벗어나 점차 시청자들 자신의 사생활이나 개인적 체험같은 현실을 스펙터클로 변화시킨 「리얼리티 쇼」형의 참여적 프로그램들의 비중이 커져가는 텔레비전을 말한다.

이런 현상은 시청자들이 엘리트나 전문연예인들의 출연프로그램 못지 않게 자신들의 모습을 매력적인 스펙터클로 즐기기 시작했고, 의미를 찾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아침시간에 매일 방송되는 모방송사의 주부참여 토론프로그램에서는 전문가의 강연을 듣는 날이 있는데 그때의 연사는 아주 능란한 스타급의 인물이 아니면 유익한 내용이어도 주부 자신들이 주역이 되는 포맷보다 시청률이 아주 저조하다고 한다. 전문가 혹은 엘리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기보다 자신들과 비슷한 처지의 주부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훨씬 더 즐긴다는 얘기다. 시청자들을 참여시켜야 한다는 명분에 밀려 마지 못해 흉내나 냈고 시청자들도 재미없는 프로그램으로 외면해서 인기가 없었던 예전과는 사정이 다르다. 일반시청자들의 텔레비전 출연솜씨는 나날이 능숙하고 세련되어져 가고 있으며 그들의 사연이나 체험담들도 웬만한 픽션의 재미를 능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추세로 간다면 일부 학자들이 예견하고 있듯이 문화·예술작품의 작가와 독자, 생산자와 소비자의 구분 자체가 애매해지고 해체되리라는 21세기의 문화적 변화가 텔레비전에서 상당히 빠르게 진행될 것같이 생각된다. 아울러 정치적·사회적 영역에서 뿐만이 아니라 문화적 영역에서도 시민들의 참여와 자기실현의 욕구가 팽배해져가고 있는 참여민주주의 시대의 한 단면을 보게 된다.

「리얼리티 쇼」나 참여프로그램들은 다루기에 따라서 민족문화, 민중문화의 활력과 창의성이 개발될 수 있는 장소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세계화시대에 방송문화가 외국프로그램에 의해 식민화하지 않을 수 있는 탄탄한 보루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요즘처럼 상업적 전략이 깊숙이 침투하여 시청자들의 생활 속에서 눈요기거리나 흥미거리를 발굴하여 훔쳐보기 취향이나 자극하는 프로그램이 만연하다가는 창조적 저력이나 자발성을 유도하기보다 시청자들을 퇴행적으로 만들게 될까봐 겁난다. 그러다가 시청자들이 자신들의 투영된 모습에 애정과 매력을 느끼기보다 역겨워하게 되면 관심은 전문가프로그램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는데 그런 영역에서는 역량의 싸움이 벌어질 수밖에 없고 우리 방송은 아직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세계화시대 텔레비전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시민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네오 텔레비전을 만들 수 있느냐에 각별한 관심이 주어져야 할 것같다.<서울대 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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