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년 6월 비디오예술의 선구자 백남준씨가 도쿄의 한 화랑에서 전시회를 가진 일이 있다. 그 때까지만 해도 6·25때 한국을 떠난 후 한번도 귀국한 일이 없어 인터뷰를 요청했다. ◆다음날 화랑으로 찾아가니 손님이 많다며 잠깐 기다리란다. 1시간20분을 기다린 끝에 자리를 같이 했으나 15분밖에 시간이 없다고 못부터 박았다. 멜빵을 한 통바지에 웃옷은 둘둘말아 옆구리에 끼고 땀을 닦은 휴지를 와이셔츠 주머니에 쑤셔박은 기이한 차림이었다. 안경은 눈앞이 아닌 머리위에 올라 있었다. ◆인터뷰 응답은 「전쟁을 피해 외국으로 도망쳤지」하는 등 솔직하고 명쾌했다. 15분이 지난 듯 싶자 그만 하자며 일어섰다. 하도 어이가 없어 다음날 아침 일찍 다시 호텔로 찾아갔다. 어제는 미안했다고 하면서도 또 15분만 하잔다. 마음내키는 대로였다. ◆스스로를 「괴짜 예술가」라고 부른 백씨가 1일부터 24일까지 갤러리 현대등 3곳에서 「예술과 통신전」이란 개인전을 갖고 있다. 예의 헐렁한 차림으로 나타나 관객을 웃기고 매료시키고 있다. 그의 기발한 작품과 여자로봇이 자동차에 치이는 등 머리를 빙빙 돌게 하는 퍼포먼스는 천재성과 천진난만함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백남준씨는 「자유인」이다. 창의성이 넘쳐 흐르는 그의 예술세계의 바탕도 바로 자유다. 자유분방한 사고와 행동 모두가 예술인 셈이다. 첨단과학조차도 과거 현재 미래와 우주속으로 마음대로 끌고 다니며 예술로 승화시킨다. 그가 일상적인 틀속에 갖혀 사는 범인이었다면 지금처럼 생명력과 실험정신으로 가득찬 예술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20일부터 열리는 광주비엔날레에선 어떠한 작품을 선보일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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