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때쯤 발표되는 스위스 소재의 국제경영개발 연구원(IMD)과 세계경제 포럼(WEF)의 국가경쟁력 보고서 금년도판이 2일 발표돼 관심을 끌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해에 이어 여전히 24위를 차지했다. 이 보고서에서 정말 흥미로운 점은 24위라는 전체 순위가 아니라 부문별 발전지표에서 양극화 현상을 보인다는 사실이다.산업생산은 48개 조사대상국 가운데 1위, 근로의식은 3위, 연구개발인력은 7위를 차지한 반면에 대외 시장폐쇄성 부문에서 3위(개방화 46위), 정부의 기업간섭은 7위(기업자율성 42위), 정부의 경쟁정책도 거꾸로 3위, 기업집중도 면에서는 46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 보고서를 통해 우리의 발전방식이 잘 나타나 있고 따라서 앞으로 우리의 발전방향을 잘 일러주는 것으로 보인다. 즉 개인차원의 능력이나 노력 정도는 대단히 높은데 비해 이러한 노력과 능력을 뒷받침해 줄 제도가 현저히 뒤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는 국가발전을 위해서 개인차원의 희생과 노력이 강조되었지만 이제는 각종 제도면에서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 희생과 노력을 오히려 욕되게 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우수한 부문과 낙후된 부문을 평균하여 24위라는 순위가 나왔는데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쪽으로 생각한다면 물량적인 면에서는 성취된 바가 상당하여 더 이상 물량을 투입하지 않고서도 사회관계 조정면에서 약간의 추가적 노력만 기울인다면 금방 선진국대열에 끼게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준다. 그러나 기대감과 환상이 처음에는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보다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사회관계의 조정쪽은 그리 쉬울 것으로 보이질 않는다. 정부의 기업간섭도와 기업집중도가 대단히 나쁘게 나타난 것은 그동안 우리 사회의 발전방식을 그대로 드러낸다. 즉 강력한 정부주도로 재벌기업을 중심으로 발전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정부와 대기업은 모두 자신의 역할에 자부심을 갖고 그 필요성을 더 강조한다. 기업은 정부가 불필요한 규제를 한다고 비판하지만 마치 옛 봉건왕국 건설을 방불케 하는 높은 기업집중도와 비대화현상을 보면 정부의 주장은 여전히 일리가 있어 보인다. 또 정부는 기업의 독과점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규제력의 부산물에 더 큰 관심이 있는 듯이 보인다.
정부와 기업이 서로에 대해 3류니 4류니 하면서 손가락질하지만 어찌보면 이 두 집단이 합심하여 사회발전을 늦추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이 두 집단은 독과점 규제와 기업자율성이라는 명분을 제공해 줌으로써 서로 존재의의를 만들어주는 기묘한 공생관계에 있지 않는가 하는 느낌마저 갖게 된다. 어쨌든 위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 두 요소가 동시에 제거되지 않는다면 내실있는 발전을 기대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그 구체적인 방법을 마련할 전망이 별로 보이질 않는다는 데 있다. 우리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는 개인적 노력들을 조직하고 지휘해온 것이 바로 정부와 대기업이었고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국가간 경쟁에서 이들의 그러한 역할은 더욱 긴요한 것으로 보여 정부와 기업의 발을 묶기가 더 힘들어 보인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물량적 발전의 내실화작업은 희망처럼 그리 간단한 것은 아니다.
정부나 대기업의 역할이 더욱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이들이 국제경쟁에서 생존해 나가는데 필요한 정보와 자원을 조직하는 능력과 자원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점은 그러한 정보와 자원을 바탕으로 경쟁력을 키워 가는 것은 여전히 개인적 노력이라는 사실이고 개인들의 추가적인 노력은 더 이상 명령적 방식에 의해 뽑아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자발성과 창의성에 바탕하여 추가적 노력을 자연스럽게 끌어낼 수 있게 하는 제도적 장치를 어떻게 만들어 내느냐 하는 점이 우리 사회내 개혁작업의 핵심과제인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의 경쟁력에 대한 총괄적 순위에 큰 관심을 기울이는 듯 하다. 그러나 사실 24위라는 순위 그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 보다 중요한 점은 부문별 지표들 간의 양극화현상에 대한 지적인데 이는 바로 우리 사회가 처해 있는 핵심적인 문제점인 것이다. 따라서 발전을 위한 개선의 방향이 이미 주어진 셈이다. 그런데 알면서도 고치지를 못한다면 24위라는 순위는 오히려 과분한 것일지도 모른다.<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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