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취재수첩을 펴보는 까닭/이종구 사회1부장(데스크 진단)
알림

취재수첩을 펴보는 까닭/이종구 사회1부장(데스크 진단)

입력
1995.09.02 00:00
0 0

사회부 사건기자 시절의 취재수첩을 살짝 열어본다. 기억의 창고속에 남아있는 「취재수첩」이다. 70년대의 전반기, 지금 생각하면 재미있는 20여년전의 일들, 그것들은 그때의 사회상을 말해주는 하나의 소묘라 할수있다. 그때 송파동이나 잠실에서 발생한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고 왕복 2차선의 광진교를 건너든지, 아니면 뚝섬에서 나룻배를 타고 건너야 했다. 광진교를 건너 우회하는 것보다는 나룻배가 훨씬 편하기는 했다. 서울에 「웬 나룻배라니」라며 웃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그게 얼마전이다. 지금 나룻배가 다니던 강위에 영동대교가 걸려있다.○나룻배로 취재길

 구로공단의 한 업체에서 개머리판 없는 소총을 쏜 뒤 현금을 강탈한 갱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구로공단은 수출의 전진기지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가끔씩 이곳에 들러 공단 근로자들을 격려했다. 이 곳에서 영화에서나 나옴직한 갱사건이 났으니 사건기자들이 얼마나 관심을 쏟았을까. 그곳에서 20여일 꼬박 밤을 새면서 아리따운 여자들은 다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그 공단에 지금은 한국인보다 외국인 근로자가 더 많다. 70년대 중반이던가. 어느날 밤 야근을 하다 건축공사장에 인명사고가 났다고 해서 부랴부랴 달려갔다. 진흙밭이었던 곳에서 큰 규모의 건축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아파트단지 공사였다. 휑뎅그렁한 이런 진흙밭에 무슨 집을 지으며, 과연 누가 와서 살겠느냐고 속으로 웃었다. 그곳이 지금 서울의 대표적 번화가 압구정동이다.

 사건현장과 연결된 3김씨에 대한 기억도 여럿 있다. 세사람의 독특한 면모를 알게 해주는 나름의 기억들이다. 마포 신민당사 YH사건에서의 YS, 김대중 납치사건에서의 DJ, 팔당 홍종철청와대사정특보 익사사건현장에서의 JP, JP는 국무총리였다. 그때도 그 세사람은 나라의 지도자였다. 지금 한사람은 대통령이고, 다른 두사람은 야당 대표이다. 세월이 흘렀는데도 사람은 같고 지도자의 위치도 같다. 단호한 의지의 사람, 정치 9단의 사람, 어지간히 참을줄 아는 사람등이 기억속 취재수첩에 남은 각각의 인상이다.

○“돈으로 해결” 여전

 사회환경은 변해도 그 사회환경을 만든 사람은 변하지 않는가 보다. 사람들의 행동과 인식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다. 무엇이든 돈으로 해결하려 하는 습벽은 도처에 남아있다. 뇌물을 주고 교육위원이 되려하고, 대학교수직을 돈주고 사야하고, 과외로 자식들의 입시기술을 사야 하는 세상이다. 문민정부의 개혁드라이브가 좋은 것인지 아닌지는 차치하고라도, 개혁이 주춤거리는 것도 기실은 돈에 얽힌 문제때문이다. 사법개혁, 교육개혁이 지금 그 모양이다. 로스쿨제도는 그 싹도 나오기 전 말다툼만 요란하다. 법조계는 왜 로스쿨제도를 한사코 반대할까. 기득권이 물타기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은 아닐까. 사실 검사 판사 변호사들에 대한 인식은 그렇게 좋지는 않은 편이다. 신문기자도 그렇지만.

○사회는 변하는데

 교육에서도 돈과 연결된것이 바로 과외이다. 학부모들 입장에서는 남들 다 시키는 과외를 안하자니 그렇고, 하자니 엄청난 돈이 들고, 그야말로 돈이 원수다. 연간 무려 17조원이 사교육비로 빠져나간다. 생활비중 가장 많은 부분이 자식들 과외비로 충당되는 이런 나라는 지구상에 우리밖에 없다. 과외비를 내리고, 과외교사의 엄청난 소득을 세수에 잡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과외실명제를 해야 할 판이다. 굳이 변변치 않은 과거의 「취재수첩」을 열어보는 까닭은 사람은 변하지 않아도 사회가 얼마나 빨리 변하고 있는지를 실감하기 위해서다. 변화의 속도에 부응하지 못할 경우 언젠가는 휩쓸려 내려가는 사태가 올지도 모른다는 자각을 해본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