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거래보다 편법에 의존 “구조적 위기”/범죄에도 타깃… 3년간 은행가 45명 피살러시아 은행들이 최근 범죄의 목표가 되는가 하면 정부의 고정환율제 연장실시로 파산위기를 맞는 등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러시아 정부와 중앙은행이 최근 미화 1달러당 루블화 환율을 4천3백∼4천9백으로 하는 「고정환율제」 실시를 올 연말까지 연장키로 결정하자 지난 25일 모스크바 은행간 외환거래소(MICEX)의 거래가 일시적으로 중단되는가 하면 하룻동안 빌리는 급전 금리가 60%에서 1천%까지 치솟는 등 금융공황현상이 벌어졌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금융시장의 혼란을 최소화하기위해 1조루블(2억2천2백만달러상당)을 긴급방출하고 6천억루블의 주식을 매입하는등 사태해결에 나섰으나 혼란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이번 사태의 근본적 원인은 무엇보다 러시아은행들의 취약한 재무구조와 투기적 거래성향이다. 일부 은행들은 당초 올 10월1일 끝날 예정이던 고정환율제 이후에 대비, 돈을 빌려가면서까지 미달러화를 대거 매입하는 환투기를 했으나 정부가 연말까지 고정환율제를 계속 실시하기로 함에 따라 결국 빌린 돈을 갚지 못해 파산상태에 빠지게 된 것이다.
현재 러시아에는 약 2천5백여개의 은행이 있는데 이중 상당수는 1∼2개 정도의 지점 밖에 갖추지 못한 영세한 은행들이다. 「호주머니 돈」밖에 안되는 자본력으로 1개 기업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식으로 영업해온 이들 영세은행중 일부는 범죄 조직과 연관을 갖고 있기도 하다.
러시아에서는 최소 60억루블(1백30만달러상당)만 있으면 은행설립이 가능하기 때문에 일부 신흥부자들은 은행을 설립해 정상적 거래 대신 환투기나 사채놀이로 돈을 벌어왔다. 이들 은행들은 그동안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에 따른 높은 인플레와 루블화의 가치폭락등 경제적 어려움을 역이용, 치부를 했으나 최근 경제가 안정을 찾아감에 따라 더 이상 살아남기 힘들게 된 것이다.
또한 많은 은행들이 범죄조직과 직간접으로 연관을 갖고 있어 지난 3년간 은행장을 포함, 은행관계자 45명이 살인 청부에 의해 숨지기도 했다.
특히 최근에는 러시아의 유력은행중 하나인 로스비즈네스은행의 키베리디은행장이 독살당했는가 하면 7월에는 유고르스키은행장이 살해돼 러시아의 전 은행들이 항의 표시로 하룻동안 영업을 중단한 일도 있었다.
사금융업이 도입된지 5년도 채 안되는 러시아에서 식당만큼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있는 은행들이 확실한 돈벌이임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가장 위험한 비즈니스라는 점이 이번 사태로 다시 한번 입증된 셈이다.<모스크바=이장훈 특파원>모스크바=이장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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