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때이르게 서두르고 있는 듯한 내년 4월 총선거의 바람이 96년도예산안과 95년도 추가경정예산안에 감지되고 있는 듯하다. 오는 9월 정기국회에 제출하는 이번 예산안들은 정부의 예산편성정책이 지난해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추경예산의 재등장이다.앞으로 추경예산의 편성을 완전히 부활시킬지에 대해서는 정부측의 공식언급이 없어 알 수 없겠으나 이번에 규모있는 추경이 다시 등장한데 대해 어리둥절해진다. 물론 6공말기이기는 하지만 정부는 건전재정과 국민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 앞으로 추경은 편성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에 따라 93년에는 추경이 없었다. 지난해에는 농어촌특별세 신설로 추경편성이 불가피했다. 그러나 작은 규모였다. 그런데 올해 추경예산안은 1조8천5백억원, 일반회계본예산(약49조9천9백억원)의 3·7%에 상당하는 것이다.
예산은 1년전에 확정되므로 세입, 세출 모두 실제의 집행과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추경예산의 편성에는 정당성이 있다. 그러나 국민이 추경편성을 회의적인 눈으로 보는 것은 정부가 추경예산을 팽창예산 편성을 호도하는 방편으로 이용해 온 점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의 추경예산을 당초 본예산에 포함시켰더라면 올해의 일반회계 본예산은 94년의 그것보다 19.9%가 증가하는 것이 된다. 분명한 팽창예산이다.
정부는 팽창예산이 악성인플레성이 되지 않도록 올해의 추경예산재원은 올해 발생하는 세계잉여금으로 충당하고 지난해의 세계잉여금(1조3천억원)은 전액 양곡증권과 외국환평형채권상환에 쓰겠다고 밝혔다. 추경편성은 정부가 일단 추경을 편성치 않겠다는 약속을 불과 2년만에 어김으로써 예산편성 정책에서도 여타 다른 정책에서나 마찬가지로 일관성을 상실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것이다.
예산편성이야말로 재정뿐 아니라 국민경제의 안정을 위해서도 정책 또는 지침의 예측가능성이 보장돼야 한다. 특히 이번 추경편성으로 내년에는 정부가 악성채무를 상환할 수 있는 재원이 없게 됐다. 더욱이 내년에는 경제성장률이 올해의 약 9%선에서 7.5%로 감소될 것으로 예상, 세수증대도 그만큼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 만큼 재정을 통한 경제안정을 기대하기는 어렵게 됐다.
96년도예산 63조(일반회계 58조·재정투융자 특별회계 5조)는 올해보다 14.9% 증가한 것이다. 적정한 수준이나 내년에 추경을 또 편성한다면 20%는 쉽게 넘어갈 것으로 상정된다. 재정인플레가 재연돼서는 안되겠다. 정치논리의 경제논리 지배를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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