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연기 끌어내는 「배우의 감독」/연극서 시작… 섬세한 연출 돋보여/「가스등」 압박해오는 긴장감 “탁월”섬세한 연출력을 지닌 조지 쿠커(GEORGE CUKOR·83년 사망)가 이야기를 주도면밀하게 이끌어 가면서 서서히 긴장감을 조성한 흑백명작 「가스등」(GASLIGHT·44년 MGM작)은 영국 빅토리아 여왕시대 유복한 명문가정에서 일어나는 살인과 음모, 탐욕과 광기가 뒤엉킨 미스터리물이다.
런던의 유명한 오페라가수였던 아주머니 밑에서 자란 폴라는 아주머니가 의문의 피살체로 발견되면서 이탈리아로 노래공부차 떠난다. 폴라는 이곳서 자기의 피아노 반주자 그레고리(샤를르 보이에)와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둘은 폴라가 아주머니로부터 상속받은 런던의 저택에서 신혼살림을 차리나 폴라가 심한 건망증세를 일으키면서 신혼의 단꿈은 짧게 끝나고 만다.
건망증이 악화되면서 히스테리증세까지 일으키는 폴라는 방안의 가스등 불꽃이 저절로 줄어드는 것을 목격하고 다락에서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나는 것을 듣기도 한다. 그러나 그레고리는 그것을 모두 환시와 환청이라면서 폴라를 외부와 차단시킨채 집안에 가둬 놓는다. 그리고 그레고리는 밤만되면 외출했다가 새벽이 돼서야 귀가한다.
놀라울 정도로 긴박감이 강렬한 미스터리 스릴러로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잉그리드 버그먼의 아카데미 수상작)와 함께 안개 자욱한 런던거리, 이야기의 중심무대인 폴라의 저택내부 세트디자인(아카데미 흑백미술상 수상)등이 영화의 압박해 들어오는 공포와 수수께끼같은 분위기를 잘 살려주고 있다.
연극연출로 시작해 할리우드로 무대를 옮긴 쿠커는 화려한 기교를 삼가고 연기와 대사에 주력한 감독이다. 그의 스타일은 연극에서 영향을 받았는데 처음부터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를 끌어내 「배우의 감독」이라는 평을 들었다. 특히 쿠커는 여배우들의 감독으로 알려졌는데 그레타 가르보, 케서린 헵번, 조안 크로퍼드등이 그의 밑에서 연기력을 뽐낸 여배우들이다.
31년 「더럽혀진 천사」로 감독에 데뷔한 그는 친구인 명 제작가 데이비드 셀즈닉과 함께 RKO를 거쳐 MGM에서 큰 활약을 했다. 둘이 만든 명작으로는 「이혼장」 「8시의 만찬」 「작은 아씨들」이 있다. 두 사람의 돈독했던 관계는 38년 셀즈닉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연출을 맡은 쿠커를 제작 시작 10일만에 해고함으로써 끝나 버렸다.
「가스등」은 40년대 쿠커의 침체기에 나온 수작이다. 그는 40년대 후반부터 5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아담의 갈비뼈」 「철부지」와 그의 최고걸작으로 꼽히는 「스타탄생」을 내놓으면서 힘차게 컴백했다.
작품선정이 몹시 까다로웠던 쿠커는 기술을 위한 기술자랑은 안했지만 액션을 잘 조성하는 솜씨와 유연한 카메라워크가 돋보였던 감독이다. 64년 「마이페어 레이디」로 아카데미상을 받았고 80세에 만든 여성드라마 「부자와 유명인사」가 유작이다.<미주본사 편집위원>미주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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