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관리업무는 정권과 함께 국가의 양대지주다.신용있는 통화를 갖지 못한 정권은 제대로 국가를 경영할 수 없다. 통화는 정권의 신인도를 높이고 국가경영의 축 구실을 한다. 국가경제의 피가 바로 통화, 즉 돈이다. 경제가 잘 돌아가려면 돈의 흐름이 바람직해야 하고 돈을 제대로 흐르도록 하는 곳이 바로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다.
○경제심장에 구멍
한국은행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바로 인체의 심장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고 한국은행이 발행한 돈이 불법으로 유출된다는 것은 심장이나 혈관에 구멍이 뚫려 피가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옥천조폐창의 신권 유출사고가 일어난지 석달도 안돼 이번에는 1년4개월전에 일어난 폐기용 지폐유출사건이 터졌다.
이런 사건이 터졌다는 것 자체가 보통 일이 아니다. 외부 범죄집단의 범행이 아니라 한국은행의 직원이 저지른 내부 범죄라는데 국민의 충격은 더하다. 국가경제의 기본축인 화폐를 발행하고 관리하는 당사자가 화폐를 빼돌린다면 누가 국가를 믿겠는가.
그러나 국민이 더 걱정스러워 하는 것은 사건을 처리하고 수습하는 한은과 재경원(당시 재무부)의 자세다. 『한은총재가 옷을 벗을 정도의 일이 아닌데…』 『의도적으로 축소·은폐했겠느냐. 단지 사건을 떠벌리면 여러가지로 나쁜 결과를 초래할 것을 우려해서 조기수습하려 했을 것이다』 『보고는 제대로 했는데 상급기관에서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다』 『보고내용 자체가 사소한 사건처럼 돼 있었다』는등 전혀 엉뚱한 소리들을 한다. 무언가 착각해도 대단히 착각하고 있다. 국가의 지주를 흔드는 일이 어떻게 작은 일인가. 검·경의 수사가 확대되고 감사원의 특별조사가 실시되고 있는데도 한은의 태도를 보면 사안의 중대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정작 한은 태도는
숱한 대형 사건·사고에서 드러났듯 모두들 수습에만 매달려 있다. 사건이 더 크게 비화되지 않도록 적당히 수습, 일단 위기의 순간만 넘기면 된다는 사고가 몸에 배어 있다. 혹시 나한테로 불똥이 튀지 않을까만 걱정한다. 국가의 통화관리기관이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아야 할 지경이 됐는데도 대오각성하는 기색을 읽을 수 없다.
한은총재를 경질했다고 사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한은의 구성원 모두가 구태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아무리 사람을 갈아도 나아질 게 없다.
국민소득 1만달러를 눈앞에 두었지만 사고방식은 국민소득 2백달러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건강한 국가는 정부나 국민이나 정해진 각종 법과 규칙을 잘 지킬때 존재할 수 있다. 룰이 지켜지지 않으면 국가가 탄탄히 서 있을 수 없다. 통화정책은 국가의 경제 룰이다. 한국은행의 이번 사건은 레프리가 스스로 룰을 깬 것이나 다름없다.
○썩기전 도려내야
아까운 인재가 다치는 것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어느 기관이나 개인의 명예가 더럽혀지고 위신이 실추되는 것을 두려워 할 때가 아니다. 쓰러지는 기둥은 바로 세워야 한다. 벌레가 서식하고 있으면 전체가 썩기전에 과감히 썩은 부위를 도려내야 한다.
감사원이나 검·경은 물론 재경원 한국은행은 흔들리는 기둥을 바로 세우고 썩은 부위를 잘라낸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