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개편·보수적 분위기 타파에 개혁 무게지폐 불법유출 사건으로 사퇴한 김명호 전한국은행총재의 후임에 이경식 전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이 전격 임명됨에 따라 이번 사건에서 비롯된 한은의 개혁작업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그동안 김전총재의 후임으로 비한은출신의 외부인사가 영입될 것으로 전망되기는 했어도 이전부총리의 임명은 매우 의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부가 이전부총리를 한은총재에 임명한 것은 이전부총리가 관계와 재계를 두루 거쳐 경제정책과 실무에 밝은데다, 57년부터 61년까지 한은에 근무했고 89년7월부터 2년간 금융통화운영위원을 지내는등 금융에 대한 식견을 겸비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최근 지폐유출사건을 계기로 대두된 한은개혁의 과제를 수행하는데 이신임총재가 적격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신임총재는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경제부총리로 입각, 홍재형 부총리(당시 재무부장관)와 함께 금융실명제 도입을 진두지휘했던 인물이다.
또 부총리 재임시절 한은의 관료주의적인 분위기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곤 했었다.
이 때문에 이신임총재의 취임은 한은의 대대적인 수술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신임총재가 24일 취임식에서 『변화와 개혁이라는 시대적 흐름에서 중앙은행도 예외일 수 없다』며 『무사안일과 현실안주에서 탈피해 각고의 자기혁신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밝힌 것은 이총재의 취임배경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이신임총재가 매우 미묘한 시점에서 청와대의 낙점을 받은만큼 한은개혁에 대해 청와대의 특별한 주문을 받고 오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신임총재는 한은개혁에 대해 『국민이 한은에 대한 믿음을 회복할때까지 몸가짐을 다시 가다듬어야 한다』고 말해 조직개편은 물론 한은의 보수적이고 관료적인 분위기를 타파하는데 개혁의 방향이 모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은의 개혁작업은 우선 조직축소와 인원감축으로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한은은 올해초 자체적인 조직개편작업에 착수했다가 지난 3월 한은법 개정문제가 제기되면서 조직개편 논의를 일단 유보해 놓은 상태다.
이신임총재의 취임으로 한은법 개정문제가 다시 불거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신임총재가 한은독립에 대해 『제도적인 보완보다는 관행에 의해 정착되어야 한다』는 소신을 피력하고 있어 한은법 개정문제가 제기되더라도 한은의 본질적 기능에 대한 손질은 없을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이와 함께 한은이 올들어 꾸준히 추진해온 각종 금융규제완화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신임총재의 취임으로 김용진 은행감독원장과 함께 금융실명제 추진의 주역들이 공교롭게도 한은에 나란히 입성하게 되었다.<김상철 기자>김상철>
◎이취임식 표정/이 총재 “독립성보장 법보다 관행으로”
○…이경식 신임 한국은행총재는 24일 취임식후 기자들과 만나 『한국은행의 독립성은 법개정을 통해서보다는 관행에 의해 보장돼야 한다』며 『이는 나라마다 중앙은행의 위상이 각각 다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신임총재는 『이같은 소신은 지난 89년 금통위 간사위원으로 재직할 당시 한은법개정에 관한 자문을 받고 답변서를 직접 작성, 밝힌 바 있다』고 말했다.
이신임총재는 한은 내부개혁과 관련, 『한은 혼자서 아무리 개혁해봐야 국민들이 믿어주지 않으면 안된다』며 『국민들이 다시 한은을 신뢰할 때까지 몸가짐을 다시 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신임총재는 취임소감으로 『사회생활의 첫발을 디딘 곳에 다시 톱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감회가 크고 영광스럽다』며 『그러나 입행동기인 김총재가 잘 돼 나가지 못하고 그 뒤를 이어받았기 때문에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이신임총재는 통화정책을 어떻게 이끌어갈 것이냐는 질문에 『1만원짜리 지폐가 처음 나올 당시 쌀 한가마 반을 살 수 있었으나 이제 10분의1도 안되는 양을 사게 됐다』며 『원화가 가치를 유지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직원들,위기상황 해결 기대
○…한은 직원들은 이신임총재의 임명소식이 알려지자 한은의 위기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경륜있는 전문가라고 환영하면서도 정통관료출신인 이신임총재가 앞으로 한은독립에 어떤 입장을 취할지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이들은 이신임총재가 한국은행과 경제기획원 금융통화운영위원등을 거친 경륜으로 볼때 「금융계 수장」으로 손색없을 뿐만 아니라 한은의 위기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한편에선 이신임총재가 지난 57년 입행한 뒤 4년만에 경제기획원으로 자리를 옮겨 순수 「한은맨」이라기 보다는 정통관료에 가까운데다 그간 사석에서 한은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점등을 들어 한은개혁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
○전 김 총재 “중립성 훼손없길”
○…김전총재의 이임식은 이신임총재의 취임식(하오2시)에 앞서 상오 9시30분 한은 별관강당에서 열렸다. 이임식은 숙연한 분위기속에 김전총재의 간단한 이임사로 끝났다.
김전총재는 이임사에서 『앞으로 경제와 금융이 선진화·세계화할수록 통화신용정책을 운용하는 한국은행의 중립적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며 『이번 사고가 중앙은행의 중립성 보장이라는 당위성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며 이 때문에 우리 스스로의 사명과 책임이 더욱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유승호 기자>유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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