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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만행 증언 「남경학살 기념관」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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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만행 증언 「남경학살 기념관」을 가다

입력
1995.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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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만명 도살 참혹한 현장 생생히…/살인·방화·강간·약탈… 생지옥역사에 분노장쑤(강소)성 난징(남경)시 강동문 다정동로(강동문 다정동로) 195호 남경학살 기념관안 한쪽 벽면에 쓰여 있는 분노의 글귀 「륙조고도, 인간지옥」.

1937년 12월13일 일제 침략군의 난징 점령부터 수개월동안 자행된 30만명 학살 만행이 이 한마디 속에 담겨 있다. 난징시가 간직하던 왕조시대의 전통과 영화가 순식간에 살인, 방화, 강간, 약탈의 생지옥으로 변한 비극의 역사를 웅변한다.

기념관의 정식명칭은「침화일군 남경대도살 우난동포기념관」. 건물 입구에 덩샤오핑(등소평)의 친필이 새겨져 있다. 85년 8월15일 일제 패망 40주년을 기념해 2만5천㎡ 부지에 건립됐으며 유골 및 사료전시실과 야외 전시장으로 구성됐다. 주로 학생들이 많이 찾아오며 최근까지 가해자인 일본인 14만명을 포함해 3백80만명이 관람했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찾아와 심어놓은 기념수는 특별히 눈에 잘 띄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의 반성을 보여주려는 것인지, 현재의 경제대국 일본을 대접하려는 것인지 중국인들의 정서가 분명치가 않다.

기념관 경내를 들어서면 건물 벽면에 한문과 일본어, 영어로 쓰여있는 「피해자 30만」이라는 문구가 우선 눈에 띄게끔 돼 있다. 주청산(주성산·42)관장에 의하면 당시 난징 인구는 모두 1백1만여명으로 이중 실제 거주 인구는 대략 60만명. 따라서 난징시 인구 2명중에 한명은 희생된 셈이다. 일본군은 항복한 중국병사와 국제안전구역에 있던 중국인들마저 살해했는데 난징을 점령할 당시 이미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학살정책을 세워 놓았다고 한다. 건물의 30% 이상이 파괴됐고 부녀자 2만명이 강간당했다. 시체도 소각 또는 매장하거나 강물에 던져버리는 등 3가지 방법으로 처리했다.

야외전시장에는 자갈밭, 자갈밭 안엔 자라다 만 나무 조각품, 자갈밭 바깥엔 잔디밭이 마련돼 있는데 각각 유골과 방화, 생명을 상징한다. 자갈밭 한쪽에는 죽은 아이를 찾으려는 어머니 동상이 세워져 있고 13개 주요 학살장소를 설명하는 글이 새겨진 돌들이 곳곳에 늘어서 있다. 일본군의 범죄행위를 조각한 돌담을 따라가다 보면 관처럼 생긴 희생자 유골 전시실이 있고 건너편에는 무덤 형상을 본 따 만든 사료전시실이 서 있다. 주로 난징시 진주 일본군인, 거주 외국인, 일본언론 등을 통해 전후에 수집된 자료들이다.

강간당한 뒤 칼에 찔려 내장을 드러낸채 죽은 임산부, 담배를 문 채 목이 잘려 목책위에 올려진 얼굴, 살인기록 경신을 장담하는 미치광이 일본군 장교들의 학살 경쟁을 보도한 일본 신문, 기관총 사살과 대검 확인 사살, 두동강 난 시체, 떨어져 나간 사지, 생존자들의 몸에 남은 상처 등 잔혹한 내용들이 많아서 자녀와 함께 온 부모들이 아이들의 고개를 돌려버리는 모습을 간혹 볼 수 있다. 그러나 기념관측에 의하면 자료가 보여주는 것은 당시 상황과 비교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난징시는 올해 일제패망 50주년을 맞아 기념관 확장사업을 벌이고 있으며 남경대학살을 다룬 중국과 타이완의 합작영화가 제작됐다. 인류사에 보기 드문 일제의 범죄행위는 계속 고발되고 있다.<난징=김병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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