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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거액 빼낼수있나” 의문/지폐유출 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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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거액 빼낼수있나” 의문/지폐유출 파문

입력
1995.08.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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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행주변 석연찮은 점들/부피큰 뭉치 묵인없이는 불능/빼낸돈 지출메모 발견하고도 모른체/열쇠 맡기는 등 관리소홀 한몫한국은행 부산지점 지폐유출사건으로 유출된 금액이 무려 3억5천만원이나 됐던 것으로 드러남에따라 과연 범인 김태영(40)씨가 단독으로 이같은 범행을 했는지에 대한 의혹이 높아지고 있다.

또 공범유무와 별도로 중앙은행이자 발권은행인 한국은행이 이같은 대형사고를 자체 확인하고도 축소 은폐하는데 급급했을 뿐 아니라 지폐 유출에 거의 무방비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범인 김씨는 지난 18일 경찰에 검거된 이후 공범은 없으며 자신의 단독 범행임을 극구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김씨는 낡은 화폐의 재사용·폐기여부를 결정하는 자동정사실의 정식 요원이 아니며 서무과 직원으로서 단지 지폐조각 수거및 정사기 고장수리등의 업무를 맡아왔다.

정사실은 내부에 CCTV(폐쇄회로 TV)가 각 모서리마다 1대씩 4대가 설치돼 있고 심사역과 담당계장이 정사기 바로 후면에서 정사실 전체를 직접 감시하는 한편 정사실밖 CCTV실에는 정사과장이 화면을 통해 내부를 지켜보는등 2·3중의 감시체계를 갖추고 있다.

따라서 김씨가 5개월여동안 10차례에 걸쳐 이같은 거액을 빼낼 수 있었다는 것은 정사실 요원이나 관리감독하는 간부들의 묵인 내지 방조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다는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또 김씨는 정사작업중 지폐조각 수거나 기계 보수등을 위해 20분마다 쉬는 시간을 이용하거나 점심시간이나 퇴근시간 직후 화폐를 폐기하는 세단기에 부착된 마그네틱 테이프를 조작하는 수법으로 절단되지 않은 지폐를 한번에 최고 5천장까지 빼냈다고 진술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이 많은 분량의 지폐를 외부로 빼냈는데도 동료 직원들이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더구나 한국은행 부산지점은 김씨의 범행사실을 확인하고도 제대로 조치를 하지 않은채 축소 은폐에 급급한데다 김씨가 훔친 돈을 증권등에 사용한 거래명세등이 담긴 노트를 발견하고도 이 돈의 출처를 전혀 조사하지 않아 내부에 공범이 있었을 개연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번 사고수사과정에서는 또 한국은행측의 정사실등 화폐관리 체계가 그동안 얼마나 부실하게 운영돼 왔는지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자동정사실은 출입문 열쇠관리자가 지정돼 있었으나 김씨가 기계수리등을 내세워 열쇠를 요구할 경우 열쇠를 아예 맡긴채 책임자가 작업을 감시·감독하지 않아 사실상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었다.

또 정사실 내부에 설치된 CCTV도 관찰이 되지 않는 사각지점이나 사람에 가릴 경우 제대로 식별하지 못하는 취약점이 있었고 김씨는 이점을 이용, 정사기 앞에 쪼그린채 수리를 위장하면서 돈을 빼돌렸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전후사정을 감안할 때 이번에 사고난 부산지점뿐 아니라 정사기를 가동하는 한국은행의 다른 지역지점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실정이다.<부산=박상준·목상균 기자>

◎정사기작업 어떻게하나/폐기대상 지폐 자동분류/세단기로 보내 잘게분쇄/범행땐 지폐손상 안되게 「센서」 조작

한국은행 부산지점 지폐유출사고에 사용된 자동정사기란 어떤 기계이며 작업과정은 어떠한가.

구속된 범인 김태영(40)씨가 범행에 사용한 자동정사기는 영국 델라루(DELLARU)사 제품으로 지폐뭉치를 넣으면 기계내 검사장치를 통해 훼손상태를 자동 검사해 계속 사용할 수 있는 지폐와 낡아 사용할 수 없는 지폐를 분류하는 것이다.

정사기는 세단기와 연결돼 폐기대상 지폐가 컨베이어를 통해 세단기에 들어오면 분리돼있는 분쇄용 칼날이 접근해 잘게 분쇄하게 된다. 이렇게 분쇄된 폐지(쇄편)는 부대에 담아 보관창고에 보관하다가 소각하며 정사기를 통과한 사용가능한 지폐는 은행 금고에 넘겨져 재유통된다.

정사기는 초당 지폐 10여장씩을 처리하는데 한국은행 부산지점측은 쇄편을 수거·처리하기 위해 통상 20분마다 기계작동을 정지시킨뒤 15분뒤 재가동해 왔다. 부산지점에는 가로 1.5m, 세로 0.5m, 높이 1.5m 크기의 정사기 4대가 있다.

한국은행 부산지점 4층에 위치한 40여평 규모의 정사실은 각 정사기 마다 여직원이 2인 1조로 8명, 감독자로 심사역 1명과 정사계장 1명이 있으며 범인 김씨는 쇄편 수거작업을 도맡아 모두 11명이 근무해 왔다.

김씨는 세단기 칼날쪽에 부착된 마그네틱 센서를 떼어내 컨베이어쪽 마그네틱에 부착, 마치 기계가 정상 작동하는 것처럼 조작한뒤 칼날부분과 컨베이어 사이를 10여㎝ 떼어놓아 지폐가 잘리지 않은채 세단기 바닥에 떨어지도록 했다. 김씨는 세단기 수리를 이유로 심사역과 정사계장등 2명이 따로 보관하고 있는 정사실과 세단기 열쇠를 넘겨받아 마그네틱등 기계를 조작해놓은뒤 주로 폐쇄회로 및 감독자들의 육안감시가 어려운 지점에 있는 2호 정사기를 이용해 범행을 한뒤 퇴근시간이후 혼자 남아 돈을 빼돌려온 것으로 드러났다.<부산=목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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