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의 홀로서기 과정 아픔 “생생”「마당에 봄꽃이 서른번째 피어날 때」는 92년 「문예중앙」 겨울호에 신인문학상 당선작으로 발표된 작품을 작가가 장편소설로 전면 개작한 것이다. 처음 이 작품을 읽었을 때의 상큼한 뒷맛이 오래도록 인상깊에 남아있는 필자로서는 장편으로 훨씬 불어난 몸체를 하고 나타난 이 작품을 대하며 적이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다.
장편과 중편의 차이에 대한 섬세한 고찰과 숙련을 동반하지 않고서 이루어지는 소설 길이의 확장은 종종 작품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고 만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보아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작가의 화사하긴 하지만 때로 감상으로 추락하기도 하는 문체와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의 허약성이 그러한 염려를 가중시켰다.
장편으로 탈바꿈한 「마당에…」를 읽고난 후 일차적으로 받은 인상은 이 작품 역시 중편으로 머물러 있을 때 갖고 있었던 활기와 완성도가 개작으로 인해 상당 부분 훼손됐다는 점이었다. 중편에선 나름대로 효과를 거두었던 두 시점의 병치는 장편에선 그 필연성이 훨씬 약화된 채 혼란스러움만 가중시켰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삶의 비극성에 대한 통찰도 이야기가 늘어짐에 따라 그 예각성이 둔화되었으며 몇몇 인물들은 너무 쉽게 등장했다가 맥없이 퇴장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중편에선 여운을 남기는 점이 장편에선 결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몇가지 부정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이 작품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그 매력은 이 작품이 80년대에 청년기를 보낸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는 태반의 소설들이 갖고 있는 경직성이나 상투성에서 성큼 벗어나 있다는 데서 온다. 의과대 동기생인 김은순과 윤철수의 22세부터 32세에 이르기까지의 생의 궤적을 추적하는 형식으로 펼쳐지는 이 작품은 단독자적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러면서도 사랑과 우정 연대에 목말라 하는 젊은 세대의 아픔을 선연히 드러낸다. 소설 속의 한 문장을 인용하자면 「세상은 자취없이 사라지며 우리들 각자는 자기 자신과 홀로 남는다」
소설은 그 홀로남음의 운명에 대개는 순응하고 때로는 일탈하기도 하는, 그러다 결국에는 묵묵히 주어진 생을 받아들이는 두 젊은이의 통과제의적 여로를 묘사하고 있다.
행복이 먼 이국의 지명처럼 들리는 20대 초입의 나이에서 정의 이상 같은 말보다는 출세 성공 같은 말이 더 좋아지는 30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두 젊은이가 보여주는 삶의 단락들은 그 자체로 많은 성찰거리와 예지를 제공해준다. 이 작가가 섣부른 달관이나 감각적 문체에 함몰되지 않고 세상과의 진지한 싸움을 계속해나간다면 우리는 아마도 90년대를 빛낼 좋은 작가를 하나 더 갖게 될 것이다.<남진우 문학평론가>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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